창원지방법원 파산부장을 마치고 수원지방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사무실로 창원지방법원에서 회생절차를 진행했던 회사 대표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수화기 저 편에서 "저…파…ㄴ…사…니…ㅁ…통…화…가…능…하…신…가…요"하며 말이 계속 끊어졌다. 금방 누구신지 알 수 있었다.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긴장하거나 낯선 사람들과 말할 때는 심하게 말을 더듬으셨다.
전화를 한 요지는 이랬다. 회생절차를 종결하고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무서로부터 부가가치세 10억 원 가량을 납부하라고 하여 곤란하게 됐고, 그래서 저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한다는 취지였다. 회생절차를 진행할 때도 법적인 문제로 늘 문의를 하셨던 분이라 이번에도 내가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가지고 수원으로 오시라고 했다. 며칠 후 자료를 잔뜩 가지고 수원지방법원 사무실로 오셨다. 전체적인 사정은 이랬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출(판매)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낸다. 문제는 부가가치세를 권리의무 확정주의에 따라 납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甲(갑)회사가 乙(을)회사에 100억 원을 외상으로 판매한 경우(대부분의 거래가 신용거래다), 甲회사는 乙회사로부터 판매대금을 전혀 받지 못했음에도 납품(판매)하는 때 10억 원(매출세액)의 부가가치세를 납부한다. 반면 乙회사는 납부할 부가가치세에서 10억 원(매입세액)을 공제한 후 납부한다. 부가가치세 납부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물품대금을 실제로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판매할 때 부가가치세를 납부한다. 이것이 권리의무 확정주의다. 그런데 나중에 乙회사가 부도나서 판매대금을 전혀 받지 못한 경우 국가는 甲회사에게 부가가치세 10억 원을 돌려준다. 반대로 국가는 乙회사로부터 부가가치세 10억 원을 징수한다.
찾아오신 분이 乙회사의 경우에 해당하는 상황이었다. 회생절차에서 채권자(甲회사)에 대한 채권 중 100억 원을 면제하고 나머지를 변제하기로 하였다. 그러자 채권자(甲회사)는 100억 원을 회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가(세무서)로부터 10억 원을 돌려받았다. 이후 국가(세무서)는 사업자(乙회사)에게 10억 원의 부가가치세를 납부하라고 고지한 것이다. 회생절차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10억 원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적은 금액도 아니고 세금은 납부한 후에 싸워야 하는 것이므로 자칫하면 회사가 파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세법이라는 것이 기업회생의 걸림돌이 된 상황이다. 몇 년 전 거래로 인해 발생한 부가가치세를 회생절차에서 채권자의 채권이 감액됐다는 이유로 다시 납부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가가 채권자에게 돌려준 부가가치세는 혜택이지 그 상대방하고는 무관하다. 그것을 상대방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맞는가. 기업하는 사람들은 회생절차에 들어가 채무를 감액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 예상하여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인가. 사업가는 이미 그 거래로 인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는 모두 마치지 않았는가.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창원에 있을 때부터 부가가치세 추징으로 회생절차에 들어온 기업들의 어려움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위와 같은 경우 사업자는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논문을 써둔 것이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논문을 건네주면서 세무서에 제출하고 사정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다. 당시 세무서에서는 부가가치세를 추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우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추징하지 않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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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처럼, 가혹한 세금은 기업인들에게 재기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회생절차는 기본적으로 조세채권자를 포함한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세금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기본이 된다고는 하지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세원이 없어지면 궁극적으로 국가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회생절차를 진행하는 기업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breathing space)을 줄 수 있는 세법의 정비와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대법원도 권리의무 확정주의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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