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비례 전쟁'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기하학의 아버지,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는 2300여년 전 '기하학 원론'에서 정의와 공리를 토대로 했다. 공리는 증명 없이 자명한 진리로 인정되며, 다른 명제를 증명하는 데 전제가 된다. 이 같은 토대에서 수학은 완전성을 갖는다. 다시 말하자면 애초에 세운 전제만 그르지 않다면 이어지는 논리적 전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대개는 달가워하지 않을 기하학이나 수학의 원류를 떠올리는 것은 다가온 총선 때문이다. 난해하다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다. '꼼수'였다가, 이제는 '꼼수에 꼼수'라는 비판과, 명분을 되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등의 말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적잖이 혼란스럽다. 뻔한 정치권 수싸움으로 비판하고 말면 속은 좀 편할지 몰라도, 정치의 수질 개선은 난망이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를 다시 들여다본다. 지역구와 비례 비율이 5.4대1에 달하고 대량의 사표(死票)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에 불일치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을 짚었다. 예를 들어 10%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비율만큼 30석을 보장받지 못하고, 지역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소수 정당을 면치 못한다는 의미다. 정당 득표의 의미를 높이자는 취지가 담겼다.
지역주의 극복도 주된 배경이다.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만 선출되는 현행 제도에서는 영남과 호남 등에서 특정 정당에 몰표를 가져다준다. 대의성을 높이고 오랜 병폐인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는 명분은 상식적으로 볼 수 있다. 현실적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국회의 다양성이다. 기존 거대 정당들의 틈을 넓혀 소수 정당들이 원내로 진입할 수 있게 한다. 어찌 보면 '동네북'이자 '안주꺼리'처럼 씹히기만 해 온 한국 정치의 체질을 변화시키는 모멘텀을 기대하게 한다.
우선은 미래통합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사달이 났다. 새로운 당을 만들어 몇몇 의원들을 파견, 기존 거대 정당의 지지율을 송두리째 받아 안는 '포장만 소수 정당'으로 세웠다. 준연동형 제도의 틀 자체가 흐트러졌고, 그 이전보다 더한 민심 왜곡 선거 우려가 커졌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은 비례 연합정당 참여로 응수했다. 이해찬 대표는 "탈법과 반칙을 미리 막지 못하고 부끄러운 정치 모습을 보이게 돼 매우 참담하고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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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은 절차상 순백을 포기했다. 차이는 있다. 거대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표를 모두 흡수하느냐, 다른 소수 정당들과 함께 표를 받아 나누느냐다. 선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해야 한다. 시작과 결과를 봐야 하겠다. 그나마 소수 정당의 의석 수 확대라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약속, 즉 비례 후순위로 받아서 욕심 내지 않겠다는 방침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의당의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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