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강자 객원기자] 올해 3x3농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 열린 대회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팬들의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 3x3코트를 누비며 맹활약한 선수 중에 '작은 거인' 한준혁(22)이 있다.


한준혁은 현재 영남대학교 3학년이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에 입학해 선수생활을 계속 했다. 그러나 동국대 입학 뒤 자신이 잘못된 농구룰 했다는 사실을 알고 6개월 만에 자퇴했다. 농구코트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다시 영남대학교 체육학부에 입학했다. 우연한 계기로 농구와의 인연은 계속 됐다. 2017년 말 KBA 3x3 코리아투어 대구 대회가 영남대학교에서 열렸다. 그는 3x3무대에 뛰어들었다. 최근 서울 어느 카페에서 한준혁을 만나 그의 농구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박강자 / 사진 박강자·이가경]

한준혁 선수 [사진= 이가경 제공]

한준혁 선수 [사진= 이가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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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혁의 농구경력

그에게 농구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아버지가 운동을 무척 좋아해서 운동선수가 꿈이셨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대신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면 꼭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아들에게 흥미를 주고 싶어서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을 데리고 다니셨다. 야구는 경기시간이 길어서 너무 지루했다. 축구는 어릴 때 많이 했는데, 아버지는 제가 발재간이 없다고 생각하셨다. 남은 게 농구였는데 농구장에서 열기와 재미를 느꼈다. 그 때 김승현 선수와 용병이 진짜 쇼타임 농구를 보여줬다. 저 작은 선수 잘한다. 나랑 비슷하다. 그래서 좋아하게 됐다."

▶농구선수생활 기록부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 선수생활은 어땠을까?


"초등학교 때는 마냥 좋았다. 농구를 하면서 뛰어 놀고, 그 때는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약간 철이 들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에 올라갈 때 키도 작고 뭐 하나 특출난 게 없다 생각해서 훈련시간이 끝나고도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중학교 3학년 때 2012년 연맹회장기 중고농구대회에서 트리플-더블(27점, 11리바운드, 11스틸)도 달성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고 기술적으로 배우고 성장했다"고 했다. 특히 용산고 2년 선배였던 허훈(KT)에게 스텝이나 픽앤롤 기술을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랬던 그가 대학교 입학 후 반 년만에 자퇴했다. "대학교 때 그렇게 (농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일반대학생활 기록부

영남대학교 체육학부로 입학한 그가 지내온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1학년 때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체육학부 학생이 60명인데 1학년 성적으로 10%인 6명만 2학년 때 교직 이수가 됐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그만두고 체육교육과를 바라보고 영남대학교에 왔으니까 10%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는 어려운 교직이수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2017년 말 영남대학교에서 KBA 3x3 코리아투어 대구대회가 열렸고 한준혁도 참가했다. "김동우(전 KCC) 형이 편하게 나가자고 했다. 주말에 영남대학교 체육관에서 대회가 열리는데 고민하다 나갔다. 농구는 공부가 안될 때 취미로 했었다. 그냥 오른손 슛을 연습해볼까 해서 꾸준히 했다. 사실 선수생활 내내 왼손으로 슛을 던졌는데 취미로 하면서 오른손 슛으로 바꾸는 연습을 했다."


그는 선수생활 하는 내내 왼손으로 슛을 던졌는데 잘못됐다는 것을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알았다.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김승현 선수를 따라서 왼손으로 슛을 던졌다. 코치님이 왼손잡이구나 생각하시고 왼손슛 동작을 가르쳐주셨다. 동국대 선수생활 시절에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이 슛감을 기르기 위해 야구공으로 캐치볼을 한다는 것을 듣고 따라 해보니 왼손으로는 직구도 제구도 안 됐는데 오른손으로 하니까 기가 막히게 제구가 됐다."


오른손 슛을 익히면서 다시 농구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


"2018년 초에 교직이수 선정되고 농구를 좀더 해보고 싶어서 11월에 한국프로농구(KBL) 신인드래프트에 도전했다. 그 사이에 오른손으로 바꾼 변화도 있으니 스카우트한테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시안게임이 있는데 3x3 농구에 갑자기 23세 이하 선수들만 나올 수 있다고 해서 김태관 선수와 함께 도전했다. KBL 윈즈가 나오면서 기회는 아쉽게 무산이 됐지만 드래프트 전까지 농구를 계속하자는 목표가 생겼다."


그는 3x3농구가 요즘 흐름에 맞는 스포츠라고 했다.


"쉼없이 공격과 수비가 반복되고 선수 숫자도 적어 코트도 넓게 쓸 수 있다. 그래서 멋있는 플레이도 많이 보여줄 수도 있고 슛도 자신 있게 쏠 수 있다. 3x3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KBL 드래프트 떨어지고 지난해 2월에 코끼리 프렌즈에서 연락이 와 계약했다."

코끼리프렌즈의 이정준, 김철, 한준혁, 김동현 선수가 컴투스 코리아 3X3 프리미어리그 2019 2라운드에서 우승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박강자]

코끼리프렌즈의 이정준, 김철, 한준혁, 김동현 선수가 컴투스 코리아 3X3 프리미어리그 2019 2라운드에서 우승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박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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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혁의 2019년

한준혁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3x3 프로선수로 분주하게 2019년을 보냈다. 그는 "주마등처럼스쳐 지났고 많이 기억에 남는 해였다"고 했다.


컴투스 코리아 3X3 프리미어리그에서 코끼리프렌즈가 두 번(2라운드, 6라운드) 우승을 차지했고, 돌파력과 외곽슛 능력까지 보완한 그는 두 차례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그리고 국가대표로 선발돼 태극마크를 달고 중국 란저우에서 열리는 FIBA 3x3 U23 월드컵 2019에 나갔다.


▶코끼리프렌즈 한준혁

한준혁은 "운동은 각자 해오고 금요일 밤에 만나서 한 2~3시간 팀플레이를 맞췄다. 올해 많이 얻은 것 같다. 제가 돋보이는 팀을 만들었는데, 형들이 많이 인정해주시고 믿고 맡겨주셔서 좋았다. 이번에 코끼리가 예상외로 우승을 두 번 하고 잘했던 것 같다. 1라운드 때 예선탈락하고 주변에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의기통합해서 2라운드 때 바로 우승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시즌을 마친 소감을 말했다.


6라운드 강팀 무쏘와의 결승전에서 우승한 경기를 회상하면서 "던지면 다 들어가는 인생경기였다"면서 "진짜 기뻤다"고 말했다.

한준혁이 지난해 10월 중국 란저우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3x3 U23 월드컵 2019 리투아니아와의 경기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 FIBA 제공]

한준혁이 지난해 10월 중국 란저우에서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3x3 U23 월드컵 2019 리투아니아와의 경기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 FIB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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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BA U23 3x3 월드컵 국가대표 한준혁

그는 3x3 월드컵 대회에 대한 소감을 묻자 "키 작은 동양인이 통할까 싶었는데 가서 막상 해보니까 제 스피드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비적인 부분에서는 좀더 보완을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제 머리 위에서 슛을 쏘니까 (웃음) 슛을 주더라도 먼 거리에서 슛을 시도하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 제가 힘이 약하면 골대까지 가까이 들어오니까 최대한 힘을 키워서 높이에서는 안되지만 힘에서는 버텨서 멀리서 던지게 하면 아무래도 확률이 떨어지니까."


당시 U23 3x3 대표팀 정한신 감독은 "3x3농구선수로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농구선수로서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좋은 활약을 해줘서 U23국가대표에 선발했다. 대회 동안에도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 같은 자세로 나간다면 3x3선수로서 발전할 것"이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020년 유니폼  [사진= 한준혁 제공]

2020년 유니폼 [사진= 한준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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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농구란 부메랑 같다

한준혁은 농구가 자신에게 계속 해서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난 농구 안해!'라고 생각하고 동국대를 그만뒀는데 어느새 오른손 슛을 연습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KBL드래프트에서 떨어지고 나서도 '난 농구 안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왔다. 부메랑처럼 자꾸 어떻게든 돌아온다. 이제는 농구를 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준혁의 백넘버

그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줄곧 등번호 11번을 달았다. "키가 쭉쭉 크라고 11번을 원래 좋아했다." 다시 농구를 시작하면서 번호를 바꿨다. "나이가 어려서 동아리나 동호회에서는 항상 형들이 좋은 번호를 다 가져가고 남는 번호가 내 번호가 됐다. 나중에 저 유니폼을 입고 어떻게 활약했는지 기억하고 싶어서 스물두 살 때부터 한 살 먹을 때마다 번호를 하나씩 올렸다. 지난해에는 코끼리에서도 23번이었고 국가대표 유니폼도 23번이었다. 올해 그의 등번호는 24번이다. 그는 올해 유니폼에 자신만의 로고도 새겨넣어 기본 유니폼을 맞췄다. "제 이름에 알파벳 'H'가 많이 들어가서 H에 농구공 무늬가 들어간 제 로고를 넣었다."

한준혁 선수 [사진= 이가경 제공]

한준혁 선수 [사진= 이가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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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향해 도약한다

"올해는 4학년에 올라가니까 교생실습도 나가야 한다. 그리고 1월에 어깨수술하고 재활하는데 3~4개월 걸릴것 같다. 보통 4월 아니면 5월부터 3x3 시즌이 시작되니까 그에 맞춰서 복귀할 수 있다. 어깨 때문에 아직 계약도 하지 않았다. 계약을 하면 조금한 마음이 들고 무리할 것 같기 때문이다. 어깨 괜찮아지는 것을 보고 계약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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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속팀 코끼리프렌즈는 아쉽게도 2019 시즌 끝으로 해체했다. 그에게 합류를 제안하는 팀들이 있다.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조금 쉬어가며 준비하는 해가 될 것이다. 일단은 조급한 마음을 안 가지고 지켜보고 후반기만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더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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