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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롯데 신화 쓴 영원한 '청년 베르테르'…디아스포라에 애정

최종수정 2020.01.20 12:20 기사입력 2020.01.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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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사업가 얼굴 뒤 인간 신격호
수몰로 울산 고향 사람들, 잔치 열어 위로
재일동포·장학생·外노동자 보듬어
'관광보국의 꿈'과 '개인적 아픔' 교차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재계 5위 롯데그룹 신화의 주인공. 매달 한ㆍ일을 오가며 최고령 경영전문인(CEO)으로서 실무를 챙겼던 마지막 1세대 창업 경영인. 19일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붙는 수식어다. 신용과 성실함을 '원칙'으로 삼고 고객 서비스와 안전점검 여부까지 날카롭게 지적했던 냉철한 사업가의 얼굴 뒤에는 '가깝지만 먼 나라'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인간적 면모가 숨겨져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울산 고향과 재일동포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 명예회장은 특히 고향 사람들에게 애착을 보였다. 고향 수몰의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1971년부터 매년 5월 울산 울주군 둔기리 별장 앞에서 잔치를 벌였다. 전근대 한ㆍ일 양국의 불편한 관계 속 모국을 잃은 디아스포라 재일 동포 후원에도 앞장섰다. 바둑기사인 조치훈 프로와 프로레슬러 역도산, 야구선수 장훈과 백인천 등이 신격호 명예회장과 인연을 맺은 대표적 인물들이다. 1994년에는 롯데장학재단과 롯데복지재단을 설립해 장학생을 지원하고 핍박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9년에는 고향민들을 위한 롯데삼동복지재단도 설립했다.


韓·日 롯데 신화 쓴 영원한 '청년 베르테르'…디아스포라에 애정

◆꿈 많던 청년 신격호=신 명예회장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 경남 울산의 재력가 집안에서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46년 와세다대학에서 화학과를 전공했다. 일본에 건너가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생으로 살았다. 배달 시간을 엄수하며 신용을 쌓았던 그를 눈여겨본 일본 재력가로부터 초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1948년 10명의 직원과 함께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한 후 1959년 롯데 상사, 1961년 롯데 부동산, 1968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일본의 10대 재벌로 우뚝 섰다.


1960년대에는 국내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1965년 한ㆍ일 국가수교를 계기로 1966년 한국에서 롯데알미늄을 설립해 기틀을 닦았다. 1967년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제과 를 창립하며 모국 투자를 시작한 기념비적 해다. 1973년 호텔 롯데ㆍ롯데 전자ㆍ롯데 기공, 1974년 롯데 산업ㆍ롯데 상사ㆍ롯데 칠성 음료 등을 세웠다.

1979년 12월 7일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가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개장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진행하고 있다.

1979년 12월 7일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가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개장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진행하고 있다.



1978년 롯데 건설, 롯데 삼강, 롯데 햄, 롯데 우유, 1979년 롯데리아(현 롯데지알에스), 롯데 쇼핑, 1980년 한국 후지필름, 1982년 롯데 캐논ㆍ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 1983년 롯데장학재단을 설립해 기초과학 분야 전공 학생 지원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롯데 캐논을 설립했다. 2011년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올랐다. 2015년 일본 롯데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대표이사에서 명예회장으로 직책이 바뀌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17년 롯데쇼핑 ·롯데건설·일본 롯데홀딩스·롯데알미늄 이사를 퇴임했으며 이 당시 롯데월드타워 개장과 함께 창업 50주년 기념 뉴 비전 'Lifetime Value Creator'도 선포했다. 지주사 체계로 전환해 경영 투명성도 높였다. 2018년에는 한국 롯데그룹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빛과 그림자=신 명예회장은 1948년 일본 롯데를 설립한 이후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1세대 기업인으로 한국에 서비스업을 뿌리내리고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특히 국내 관광업계 발전을 주도한 공로로 1981년 동탑산업훈장을, 1995년에는 관광산업계 최초로 금탑산업훈장도 받았다. 신 명예회장은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갈수록 준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그들이 우리나라를 다시 찾도록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외화를 유치하려면 관광사업이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롯데의 창업주지만 개인 가족사의 아픔도 있다. 신 명예회장이 현직에 있을 당시 경영승계 구도를 확립하지 못하면서 2015년 불거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인 일명 '왕자의 난'으로 수모를 겪었다. 일평생 이뤄 놓은 롯데그룹의 이미지가 대내외적으로 크게 악화되기도 했다.

2011년 6월 5일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월드타워의 제2롯데월드 단지(C2)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

2011년 6월 5일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월드타워의 제2롯데월드 단지(C2) 건설 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



'21세기형 마천루'를 꿈꿨던 신 명예회장의 꿈의 결정체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초반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제2 롯데월드 사업 일환인 초고층 프로젝트 롯데월드타워는 1988년부터 수차례 백지화됐지만 2011년 최종 승인을 받아내 2017년 완공됐다. "고궁만 보여줄 수 없다"며 정부를 설득해 얻은 결실이었다. 완공 후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굉장히 감탄했다. 아름다운 타워다"라고 극찬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태어났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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