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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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마지막 살았던 곳이 프랑스 동남부의 무쟁(Mougins)이라는 작은 마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태어난 스페인의 말라가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프랑스의 파리ㆍ앙티브ㆍ발로리스 등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곳에 위대한 화가의 업적을 기리는 '피카소미술관'이 있다.

각양각색의 미술관에서 피카소를 다각도로 들여다볼 수 있다. 오랜 시간 활동했고 5만점을 웃도는 작품이 남아 있는 데다 영향력 또한 컸기에 그가 지나간 장소들은 그를 위해 뭐든 해야 했던 것이다.


1953년부터 구상된 말라가의 미술관은 2003년 문을 열었다. 작품은 피카소의 가족이 기증했다. 16세기 건축물 부에나비스타 궁전이 미술관으로 활용됐다. 피카소가 태어나 10세까지 살았던 집은 인근에 생가로 보존돼 있다.

피카소는 청소년기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그는 여기서 천재성을 드러내며 화가의 길로 나아갔다. 1963년 고딕 양식의 아길라르 궁전에 개관한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미술관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소장 작품은 3000점이 넘는다. 피카소는 바르셀로나를 매우 사랑한 나머지 작품까지 직접 기증해 생전에 개관이 가능했다.


20대 초반의 피카소는 파리에 정착했다. 그는 파리에서 좌절과 도약을 번복하며 거장으로 완성돼갔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살레 저택을 개조해 꾸민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은 1985년 개관했다.


피카소 사후 상속인들은 그의 작품 다수를 프랑스 정부에 헌납했다. 작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낼 수 있는 제도 덕이다. 프랑스 정부는 아름다운 저택을 스페인 국적 화가의 미술관으로 개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앙티브의 피카소미술관은 그가 불과 3개월 머문 고성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에 의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발로리스에는 도자를 중심으로 한 국립 피카소미술관이 있다.


이 밖에 세계의 많은 미술관에서 피카소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들 미술관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그를 추모하는 방식도 열정적이다.


그렇다면 피카소가 삶을 마감한 무쟁은 어떨까. 무쟁은 영화제로 유명한 칸에 인접한 중세풍의 고즈넉한 마을이다. 피카소는 무쟁에서 15년 정도 살다 갔다.


마을 입구에 피카소의 커다란 얼굴 동상이 있다. 다른 현대 작가의 조상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 마을 지도에 피카소를 둘러싼 안내나 설명은 없다. 걷다 만나는 개성 있는 갤러리와 자부심 높은 음식점들이 더 인상적이다.


그렇게 지나다 마주한 사진미술관에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르코르뷔지에(1887~1965) 같은 예술가들 사진이 함께 전시돼 있다. 한 카페의 주인은 피카소가 오기 전부터 무쟁은 예술과 음식이 멋졌던 곳이라고 자랑했다.


피카소를 떠올리지 않아도 무쟁은 충분히 보석 같은 마을이다. 노(老) 대가는 삶의 종착지로 이곳을 택했다. 그러나 마을은 자기 길을 가고 있다. 피카소는 좁고 한적한 골목을 여유롭게 산책했을 것이다. 소박한 카페에서 이웃들과 담소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의 평온한 죽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쟁에서는 피카소가 바라보고 느낀 것들을 볼 수 있다. 무쟁이 택한 것은 피카소의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을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다. 피카소의 작품이 한 점도 없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를 진정 추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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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큐레이터 성북구립미술관장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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