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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한지의 숨결⑦]책·벽지·옷으로 부활…종이에 '뜻'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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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지의 현주소<하>
자생력으로 또 다른 1000년

전주시, 교과서 한지 지도 수록
수의·납골함 등 장례물품 활용
신축 아파트 벽지 대량 납품도

[천년 한지의 숨결⑦]책·벽지·옷으로 부활…종이에 '뜻'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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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곳은 줄었는데 만드는 건 더 힘들어졌다. 사위가 한지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왔을 때도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린 것도 그래서다."(장응열 원주한지 대표, 강원도 무형문화재)


"지난달 중국에서 열린 국제종이비엔날레는 상하이 지방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다. 우리보다 늦게 행사유치에 뛰어들었지만 국제 규모의 비엔날레를 선점해간 것도 그런 지원이 밑바탕이 된 덕분이다."(김진희 한지개발원 이사장)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김흥순 기자] 전통 한지(韓紙)가 어려워진 건 과거에 견줘 수요가 급감하는 가운데 한지의 원재료인 닥나무 수급이 어려워진 영향이 크다. 한지는 과거 장판ㆍ창호 등 주변 일상에서 흔히 썼으나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활용처 자체가 줄었다. 1990년대 들어선 공예품으로 한지를 쓰는 수요가 생겨났으나 오래 가진 못했다.


국산 닥나무 자체가 줄어든 데다 1차 가공 후 가격이 워낙 비싸 이미 수록한지업체 상당수는 수입산 닥나무를 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지원정책을 내놓은 적도 있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된 탓에 일선 현장의 체감도는 지극히 낮다. 고사 위기의 전통한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제한적인 수요를 늘리는 한편 원료수급 체계 안정화 등 산업으로서 자생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통문화로서 한지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중앙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정책적 지원 역시 필요한 일이다.


한지를 활용해 만든 지도

한지를 활용해 만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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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ㆍ벽지에 수의까지 한지로" = 전통한지를 산업과 연계하려는 시도는 다방면에서 추진되고 있다. 한지의 고장으로 꼽히는 전북 전주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교육 목적의 한지를 해마다 보급한다. 이 지역의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는 전통한지로 제작한 전주 지도를 올해 관내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우리 고장 전주' 편에 수록해 배포했다.

지도 제작에는 전주 한지장인 4명이 생산한 전통한지 2500여장이 쓰였다. 김선태 한국전통문화전당 원장은 "한지가 교육교재나 인쇄 출판물로서 손색없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며 "한지의 교과서 채택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통한지가 여러 방면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련 사업들을 발굴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당은 2016년부터 추진한 전통한지 보급사업을 통해 그동안 한지 고지도 제작, 한문화 소개 편지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1학기에는 1872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 27㎝, 세로 42㎝ 크기의 채색 고지도 7000부를 전통 한지로 제작ㆍ보급했다. 고서와 중요서신에 대한 복본(원본과 같게 여러 벌을 만드는 일) 사업도 있다. 임현아 한지산업지원센터 연구개발실장은 "1회성 복본 사업에만 국한하지 말고 30년 이상 장기 보존이 필요한 중요 문서를 전통한지로 제작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북 완주군에서는 2013년 혁신도시에 조성된 신규 아파트에 대승 한지마을에서 생산한 한지 벽지를 납품해 대량으로 사용한 사례도 있다. 최태호 충북대 목재ㆍ종이과학과 교수는 "친환경 소재인 한지벽지의 장점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단가 문제로 건설사가 채택하기를 꺼린다"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시공에 한지로 만든 자재가 쓰일 수 있도록 관련 법규나 조례를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장례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엔딩산업'에서도 한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수의(壽衣)와 납골함 등 장례 물품에 한지를 쓸 수 있다는 얘기다. 수의 한 벌을 만드는 데 A4용지 크기의 전통한지 550여장이 들어가 대량납품이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기품 있는 한지 수의를 통해 장례를 어두운 측면으로만 부각하지 않고, 고인에 대한 예우도 다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면서도 "상조업체나 장례식장에서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등 진입에 어려움이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수요량 847t..원료는 230t 불과
닥나무 '재배→판매' 구조 사이 '가공' 분업하면 안정화 기대
中선지·日화지 유네스코 지정..최소한 규격조차 없는 한지
체계 갖춰 전통문화 가치 높여야

◆유네스코 무형유산 추진 필요 = 한지 업계에서는 전통문화로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의 선지(宣紙)는 2009년, 일본 화지(和紙) 2014년에 각각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됐다. 해외는커녕 국내에서도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만큼, 전통문화이자 산업으로서 체계화해 알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중국ㆍ일본은 물론 과거 유럽 내 종이보급에 앞장섰던 이탈리아 등 종이선진국의 경우 전통방식으로 만든 종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전통산업 명맥을 잇고 있다. 일본 미노 화지박물관의 세이야마 다케시 관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전통종이 생산을 위한 기술이 잘 계승되고 있는지, 전통종이를 대표하는 각 지역마다 화합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토대로 다른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제지업체 페드리고니 파브리아노재단의 리비아 파지오니 코디네이터가 100여년 전 출시된 편지지 형태의 종이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찾는 소비자가 있다고 한다./파브리아노=최대열 기자

이탈리아 제지업체 페드리고니 파브리아노재단의 리비아 파지오니 코디네이터가 100여년 전 출시된 편지지 형태의 종이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찾는 소비자가 있다고 한다./파브리아노=최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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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보급하는 데 최일선에 있는 제작자가 수익성을 갖추기 위해선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으로서 육성ㆍ지원하는 한편 해외 수출까지 염두에 둔다면 지금처럼 오롯이 개별 공장이나 장인 차원의 제조방식을 최소한의 규격을 갖춰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제품이나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제조방식이나 원료, 시험방법 등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값싼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해 국내에 유통되고 있으나 한지에 대한 명확한 표준이 없어 한지 원형을 유지하는 업체는 기술경쟁력과 수익기회를 잃고 있다"면서 "표준화는 획일화와는 상반된 개념으로 다양성과 전문성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원료수급 안정적 체계 갖춰야 = 한지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연간 국내서 생산되는 닥나무는 230t 정도로 추산된다. 연간수요량이 847t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도 채 안 된다. 나머지 부족한 물량은 수입산을 쓴다. 센터 관계자는 "수입닥은 방부제나 표백처리가 된 데다 섬유장 길이 등 성분이 국산닥과 다르다"면서 "종이의 질과 보존성 측면에서 국산닥이 좋지만 가격이 16배가량 차이가 나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국산 닥나무 재배가 줄어든 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나무 자체가 고사한 데다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재배한 이가 닥나무를 곧바로 한지업체에 넘길 게 아니라 제3자에게 맡겨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거치는 등 분업을 적용하는 게 적절할 것으로 한지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김진희 한지개발원 이사장은 "닥나무를 파는 쪽은 1차 가공하기 전이라 너무 싸게 팔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고, 구매하는 쪽은 1차 가공도 직접 도맡아 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비싸게 여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 지자체가 이러한 1차 가공업무를 노인이나 어르신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지의 원재료인 닥나무. 껍질을 벗겨 가공한 후 한지를 만든다.

한지의 원재료인 닥나무. 껍질을 벗겨 가공한 후 한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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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한지의 숨결⑦]책·벽지·옷으로 부활…종이에 '뜻'을 담다 원본보기 아이콘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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