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찰 최초의 여성 경무관, 독립운동가 황현숙 선생
1919년 천안서 만세운동 주도, 유관순 열사와 옥고
1929년 학생항일운동도…건국훈장 애족장 수여
광복 이후 여자경찰 특채, 경무관 임명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1919년 3·1운동 당시 충남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황현숙(1902~1964) 선생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경무관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경찰의 별’ 경무관은 현재 군대에 빗대면 준장에 해당하는 경찰 고위직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치안총수 바로 밑 계급이었다. 남성 중심 정서가 강했던 시대에, 특히 경찰업무 특성상 남성 비중이 컸던 만큼 황 선생은 경찰 내 ‘유리천장’을 깬 최초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찰에 따르면 1902년 천안에서 태어난 황 선생은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이 펼쳐지자 천안 입장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3월20일 민옥금 선생, 한이순 선생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한 황 선생은 태극기 수백 장을 제작하고 학우 80명을 인솔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만세운동에는 주민 600여명이 합세하며 세를 키웠으나,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50여명이 체포됐다. 황 선생 역시 체포돼 같은 해 4월28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유관순 열사와 함께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이후 1924년 일본 요코하마신학교로 유학을 떠난 황 선생은 졸업 후 호남지방 최초의 근대여성교육기관인 전북 군산 ‘멜볼딘여학교’와 영신여학교의 교편을 잡고 후학들을 양성한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벌어지자 학생들의 동맹휴학 배후 지도자로 지목된 황 선생은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된다. 황 선생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옥중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꿈에 그리던 1945년 광복 이후 황 선생은 조국 재건 활동에 나선다. 조선여자국민당을 조직해 총무 및 부당수로 임명됐고, 백범 김구 선생·이승만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어지러운 시기 여성계의 지도적 인물로 활발히 활동한다.
특히 황 선생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경찰에 특채, 고위직인 경무관에 임명돼 김분옥 총경의 후임으로 제3대 치안국 여자경찰과장에 임명된다. 이는 여성으로 경무관에 오른 최초의 사례다. 지금이야 경무관 위에 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 등 3개 계급이 더 있지만 당시만 해도 경찰수장인 치안국장 바로 밑 계급이었다. 남성 중심적 사고가 훨씬 강했던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1946년 7월 ‘민주경찰’을 표방하며 처음으로 도입된 여자경찰은 여성·소년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여성 관련 사건처리 등을 맡으면서 국민 보호 경찰 활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당시 여자 경찰은 여성 권익 향상과 여성 계몽에 앞장섰던 ‘신여성’들이 많았고, 독립운동가 출신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인 안맥결 총경, 유관순 열사의 올케 노마리아 경감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비록 여자경찰로 구성된 여자경찰서는 1957년 폐지되나, 여자경찰의 명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50년 경찰에서 퇴임한 황 선생은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1964년 10월20일 별세했다. 황 선생은 2015년 독립운동 유공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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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선생이 여성 최초의 경무관이었음이 확인되면서 이제까지 총 55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이 발굴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을 발굴해 참된 경찰정신의 표본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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