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또 '등하불명(燈下不明)', 즉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두워 바늘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중요한 것을 가까이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빗댄 말입니다.
'과유불급'과 '등하불명'이라는 두 고사성어에 공통점이 존재할까요? 최근 이 두 단어가 '위생'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음을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흔히 재물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거나, 가까이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찾지 못할 때 쓰는 말이 어떻게 위생 상태가 지나치거나 모자랄 때 사용하는 단어가 됐을까요?
지나친 위생은 지나친 청결 상태를 요구합니다. 청결이 지나치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각종 미생물을 박멸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 미생물 가운데는 해로운 세균도 있지만, 이로운 세균도 있습니다. 지나친 위생이 이로운 세균마저 죽인다는 말입니다. 이 경우 인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질병에 더 쉽게 노출되거나, 치료하기 더 힘든 강력한 세균이 만들어져 생존하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해로운 세균과 이로운 세균이 조화를 이뤄 경쟁하는 상태일 때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과학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과유불급'입니다.
내과 중환자실과 항공우주산업에서 운영하는 청정실, 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공공 및 민간 건물이 항생제 내성균을 더 발달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공대와 의대, 빈 대, 이스라엘 벤구리온대 등 국제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나치게 위생을 강조하는 병원의 중환자실 등이 오히려 항생제 내성균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환자실은 일반 병실보다 세균 감염 위험이 2~7배가량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면역이 약한 중환자들은 적은 양의 바이러스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데 기구를 사용해 환자의 몸 속을 치료하거나 약물을 주입해야 해서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와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중환자실의 경우 위생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세균까지 박멸돼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연구팀은 항생제 내성균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병원의 중환자실이나 청정실 등 위생이 강조되는 시설의 경우 미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규칙적인 환기와 실내 화분 재배, 유익한 미생물의 계획적인 사용, 항균 세제 사용을 줄이기 등의 방법으로 해로운 균과 이로운 균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달리 위생을 소홀히 해 발암 위험이 높아진 곳이 있습니다. 바로 소방관들의 휴식처인 소방서입니다. 소방관을 병들게 하는 곳이 화재 현장이 아닌 자신들의 휴식처였다는 소식은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화재 현장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소방서의 위생을 소홀히 해 낡은 건물을 소방서로 사용한 결과였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와 메사추세츠공대(MIT) 공동 연구팀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오래된 소방서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 여러 곳의 대기질을 측정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보스턴 소방관들의 높은 암 발생률의 원인이 소방서에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연구에 착수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소방차 주차장, 주방, 건물 외부의 4곳을 조사했습니다. 트럭의 배기가스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포집되고 배출되는지, 각 역의 오염 물질이 트럭 주차장에서 가장 높았는지, 소방관이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는 생활 지역의 오염 물질 수준 등을 측정하고, 분석했습니다. 또 소방관의 생활 조건 및 건강 습관에 대해서도 인터뷰했습니다.
분석결과는 안타까웠습니다. 소방관들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보스턴의 구형 소방서 건물 대기 중에서 화석연료에서 유래한 작은 입자와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s)라고 불리는 암 유발 화학물질 두 가지가 발견됐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소방관 3만명을 대상으로 1950년부터~2009년까지의 업무 및 건강 관련 데이터를 조사한 최근 보고서와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소방관은 소화기, 구강, 호흡기 및 비뇨기 질환에 대한 암 진단 및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소방관은 석면 노출과 관련된 드문 암인 악성 중피종 발병 확률이 다른 직업에 비해 2배 정도 높았고, 젊은 소방관은 방광과 전립선과 같은 특정 유형의 암이 예상보다 많았으며, 화재 발생 시간에 따라 폐암 발생률이 증가했습니다. 백혈병으로 사망할 확률도 화재 발생 건수에 따라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화재 현장보다 휴식하거나 대기하는 소방서의 환경이 더 나쁘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지요. 연구팀은 "화재 현장과 비교하면 소방서는 안전한 장소처럼 보이지만, 소방서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소방관들에게는 낮은 수준의 노출조차도 위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각 주 정부는 이후 소방서 건물 설계에 이 연구결과를 기준으로 삼아 트럭 주차장은 거실과 떨어진 공간으로 옮기고, 체육관도 트럭 주차장의 가스가 없는 지하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