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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61] '아담의 창조' 아래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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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숨결 불어넣기. 인간의 밖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신의 숨결. 영감의 어원입니다.


영감(inspiration)은 교회언어로는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로부터 영원히 나오는 성령(spiration)이 인간의 안으로(in) 들어오는 걸 말합니다. 예술에선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상상력을 가리키지만 그 기원이 예술가 내면에서 자라나는 것인지 외부에서 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영감에 가득 찬 이 작품. '아담의 창조'에 나타나는 독창성은 무엇일까요? 이 작품을 패러디한 짐 캐리 주연의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2003)'는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순간을 전기 스파크로 표현하지만 원작품에는 감춰져 있습니다. 하느님의 숨결(루아·ruah)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그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교감을 누구든 알아차릴 수 있게 합니다. 하느님의 손과 아담의 손은 그림 전체를 수평에 가까운 사선 구도로 나누며 연결돼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교감을 이처럼 대담하고 멋지게 표현한 작품은 아담의 창조 이전에 없었으며 이후에도 없습니다. 미술사가들은 말합니다.


"아담의 창조는 미켈란젤로의 상상력을 가장 깊게 고양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장면은 아담의 육신의 창조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신의 섬광(영혼)의 통과를 나타내는 것이며 다른 어느 예술가도 이룩하지 못했던 인간과 신을 대치시킨 극적 장면을 이루어 놓았다(HW 젠슨·'미술의 역사')."

"이 위대한 창조의 힘찬 동작과 신의 전지전능함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고안해낸 방법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 중의 하나이다(EH 곰브리치·'서양미술사')."


이러한 미적 독창성이 미켈란젤로를 유명하게 했지만 제가 주목하는 점은 아담의 창조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신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이해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창조주와 피조물, 신과 인간,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킵니다. 하느님과 아담이 각자 뻗은 손가락을 통해서 말입니다.


하필이면 왜 손가락일까요? 왜 코나 입이 아닐까요? 이것은 미켈란젤로만의 영감일까요? 한국 최초의 미술기자인 이구열(1932~)은 '세계의 명화(르네상스편·1980)'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흥미롭게 설명합니다.


"천지창조 연작의 하나로 제단에서 네 번째 설정된 이 장면에는 옛 성가의 '아버지의 오른손 손가락이 다가와…' 하는 대목 그대로 오른손을 길게 뻗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손가락을 건드려 그의 육체 속에 영혼이 깃들게 하려는 야훼의 극적 순간이 그려져 있다."


'아버지의 오른손 손가락이 다가와…'라는 표현은 놀랍습니다. 이 해설이 믿을 만하다면, 16세기 당대나 그 전 시대에 이런 구도에 대한 이야기 정보가 찬송가로 불렸으며 그런 음악적 내용을 미켈란젤로가 빌려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이 손가락을 통한 영혼의 전달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미켈란젤로만의 영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루아가 일종의 에너지이며 작용과 변화와 운동의 특성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이 특성 때문에 사람이 여타의 만물과 구별됩니다.


손가락은 인체의 끝부분. 세상을 향한 인류의 최첨단 안테나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명화 아담의 창조에는 손가락의 상징이 잘 나타나 있지요. 물질 창조의 주체이자 영혼 전달의 수단인 손가락! 저는 이것이 '인간의 손에 대한 최초의 근대적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미지 디자인을 통해 기능성과 영성이 결합한 인류의 사유 체계를 처음으로 선보인 것입니다.


손과 손가락 속에는 창조의 자유의지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더불어 의식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든 함부로 손가락질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손가락질하는 마음이 에너지의 형태로 작용합니다. 총질이나 칼질이 생명을 해하는 것처럼 손가락질도 생명을 해하지요.


또한 누군가를 위해 좋은 마음을 내면 상대방도 함께 좋아질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실천은 손과 팔을 곧게 펴는 것. 대상을 향해 최첨단 안테나를 뻗는 것입니다. 나를 곧게 펴서 다른 사람에게 뻗기! 이 과정의 사회적 양식이 바로 악수입니다. 악수가 연이어지면 상생의 공동체 의식이 탄생합니다. '손에 손 잡고!'


아담의 창조의 숨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자리이타(自利利他). 불교의 가르침에도 있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영혼이 있다면 내 영혼이 모두의 영혼입니다. 한 방울의 바닷물이 바닷물 전체와 같은 것처럼, 나는 곧 당신입니다. 이웃을 위해 손을 뻗읍시다. 감추거나 돌아가지 맙시다. 빛이 직진하듯 좋은 마음은 당신을 향해 직진합니다. 당신은 곧 나입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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