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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정의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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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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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로 잘 알려진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는 생에서 병으로 두 번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 북부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자란 마티스는 원래 법학도였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스무 살 무렵 그는 심한 맹장염을 앓게 된다. 큰 수술 뒤 회복하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물감을 선물했다. 그는 물감을 '파라다이스'라고 부르며 훗날 회상한다. "내 손에 물감 상자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이것이 내 삶임을 알았다"고.

이렇게 조금 늦게 시작한 화가의 길은 평생 작업에만 몰두한 성실하고도 독창적인 예술가의 삶으로 채워지게 된다.


마티스는 주로 파리에 있었지만 중년 이후 남프랑스의 니스에서 살았다. 아내와 헤어지고 몇 년 뒤 71세 되던 해 그는 암을 선고받고 극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수술을 받고 삶은 지속됐으나 걷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전과 달리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종이 오리기였다.


말년 투병 시기에 고독한 예술가를 극진히 보살핀 이가 모니크 부르주아라는 간호사다. 부르주아는 마티스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와 딸처럼, 때로는 정겨운 친구처럼 두 사람에게는 각별한 신뢰와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부르주아는 수녀원에 들어가 자크 마리라는 이름의 수녀가 됐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1946년 니스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방스에서다. 이듬해 도미니쿠스회에서 방스의 예배당 건립 계획을 세웠다. 이때 마리 수녀가 마티스에게 자문을 구했다. 마티스는 예술적 조언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곧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도안하고 창문 전체로 확대하다 결국 예배당 설계 전체를 맡게 된다.


몸이 불편한 마티스는 자기의 아틀리에를 예배당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고 비율에 대해 생각하며 작업 모형까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병환으로 고통받는 77세의 늙은 거장이 열정적으로 작업에 매달린 것은 오롯이 자기를 돌봐준 마리 수녀에 대한 감사와 우정의 표시였다.


마티스는 대다수 프랑스인이 그렇듯 태어날 때 세례를 받았지만 전쟁을 겪어낸 당시 지성인들처럼 오랜 시간 무신론자로 살아왔다. 그런 마티스가 꼬박 4년 동안 성당 장식 작업에 몰두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재정 등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으나 로제르 성당은 1951년 6월 완공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3년 뒤 마티스는 86세로 니스에서 생을 마감한다.


로제르 성당은 소박하지만 흰 건물에 마티스가 좋아한 파란 지붕이 대비되는 인상적인 걸작이다. 마티스는 생명의 나무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채웠다. 빛이 들어오면 노랑과 파랑의 나무들은 살아 숨쉬는 듯하다. 이곳은 종교를 초월해 모든 사람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 공간에서 문득 한 예술가를 바라봤던 내 사고가 얼마나 경직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미술사조의 야수파, 파블로 피카소와 맺은 관계, 이상적 색채주의자, 현대미술의 거장 등 그곳에서는 어느 수식어로도 인간 마티스를 넘어설 순 없었다.


이야기가 담긴 장소가 주는 울림은 이처럼 강하다. 때로는 단편적으로 인식해 무엇으로든 구분하려 했던 선입견이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결국 생각의 유연함을 배우게 된다. 예술가를 알아가는 것은 곧 그의 삶도 함께 배워가는 것이기에.


우정으로 탄생된 작은 예배당. 결국 그곳에서 마티스의 작품들이 주는 행복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김보라 큐레이터ㆍ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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