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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려면 별수 있나" 차도로 내몰리는 폐지 수거 노인들 [그것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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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 손수레 차로 분류…차도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
폐지 줍는 노인들 교통사고 매년 꾸준히 발생

한 70대 노인이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위태롭게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한 70대 노인이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위태롭게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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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편집자주] 자칫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큰일로 여겨지는 '그것'을 포착해 전해드립니다.


"먹고 살려면 별수 있습니까, 그냥 건너가야죠"

13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에서 만난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70대 노인 A 씨는 '손수레를 끌고 차도를 다니는 것이 위험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하고 인근에 있는 고물상으로 사라졌다.


폐지를 가득 실은 A 씨는 차들이 늘어선 대로변을 아슬아슬하게 건너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차들 역시 A 씨 손수레를 보고 경적을 울리는가 하면, 가다 서기를 반복해 교통체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9월 시내 자치구 24곳에서 활동하는 65세 이상 폐지수집 노인 2,417명에 대해 실태 조사한 결과 월 10만 원 미만으로 돈을 번다는 응답자는 51.9%에 달했다.

폐지수집 노인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은 3분의 1이 넘는 35%로, 나이로 보면 76세 이상이 4분의 3에 가까운 74.5%로 집계됐다. 폐지수집 노인 가운데 절반은 1인 가구였고, 경제적인 이유로 폐지를 줍는다는 사람이 82.3%나 됐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A 씨 말 그대로 먹고살려고 거리로 내몰리는 셈이다.


문제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차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손수레는 차로 분류, 인도로 다닐 수 없다.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오후 8시께 서울 용산구에서 술에 취한 채 카니발 승용차가 마주 오던 파지 손수레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손수레를 끌던 B씨(당시 79·여)가 인도로 넘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또 2017년 1월 광주 서구 농성동의 한 도로에서는 택시가 폐지를 싣고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가고 있던 손수레를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손수레를 끌던 C(당시 71)씨가 숨졌다.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가 도로에 놓여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손수레는 차로 분류, 인도로 다니면 범칙금이 부과된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폐지가 가득 실린 손수레가 도로에 놓여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손수레는 차로 분류, 인도로 다니면 범칙금이 부과된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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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를 수거하는 노인이 차에 부딪혀 숨지는 사례는 매년 발생한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3년간(2016~2018년) 18명이 숨졌다.


지난 한해만 노인 6명이 폐지를 줍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4명, 2017년 8명이 숨졌다. 사망사고만 집계에 잡히는 것을 고려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상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폐지 주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노인은 지난 6월 기준으로 2,935명이다. 주로 한밤이나 새벽에 느린 속도로 무거운 수레를 끌다 보니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에 쉽게 노출된다.


그럼에도 노인들이 위험한 차도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현행법상 손수레는 차로 분류, 인도가 아닌 차도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상 손수레가 인도로 다니면 불법으로 범칙금 3만 원이 부과된다.


이렇다 보니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30대 직장인 D 씨는 "법 개정을 빨리 서둘러 안타까운 사고를 막는 것이 사회 복지가 아닌가 싶다. 시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 직장인 E 씨는 "매일 아침 출근길, 폐지를 주워 손수래를 끌고 차도를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봤는데, 이런 이유가 있는지 몰랐다, 국회에서 관심을 두고 서둘러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는 손수레가 인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안이 2017년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손수레 규격 기준 등 문제로 2년째 상임위에 계류되어 있다.


전문가는 신속한 법 개정안 처리를 당부했다. 한 사회복지 관계자는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사고가 공론화되고 법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신속한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 손수레 사고 방지 취지의 제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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