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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 대한민국 운명을 바꾼 9명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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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민주화운동의 산물…대한민국 헌법의 가치 지켜낸 30여년의 헌재 역사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주문에 모든 이의 시선이 쏠렸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확정된 순간이다.

헌재는 이날 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정문을 남겼다. 한국 정치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어려운 한 걸음, 헌재의 고뇌가 녹아 있는 내용이었다.


"상당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국가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 비용이다." 이날의 사건은 헌재가 어떤 위상을 지닌 기관인지 우리 사회에 각인된 계기가 됐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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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다. 1988년 9월 설립된 헌재는 위헌 여부와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등을 담당한다. 9명의 헌법재판관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내일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녔다.

헌재 30여년 역사의 결정적인 그 순간을 되짚어본 책이 나왔다. 김광민 변호사가 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헌법재판소 결정 20'이 바로 그것이다. 헌재의 빛나는 역사와 오욕의 역사가 모두 녹아 있다.


헌법재판관 9명은 본연의 역할에 대해 고려할 때 자기의 선택과 관련해 중압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판단의 잣대가 일그러진다면 그 부작용은 상상을 넘어설 수 있다. 헌법재판관이 여론의 거센 압력에 직면해도 소신 있게 결정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장은 정상적 삶이 어려울 정도로 비판 받더라도 세상을 바로 세우려면 누군가 결단해야 한다.


동성동본 금혼의 족쇄를 풀어놓은 1997년 7월16일 헌재의 결정(95헌가6)도 그 가운데 하나다. 과거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등 각각 인구 수백만 명에 이르는 대표적 동성동본들은 운명의 짝을 만났을 때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상대가 자기와 같은 김해 김씨일 경우 법적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낙태죄에 대한 위헌판결이 난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을 촉구했던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판결 소식을 들은 뒤 환호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낙태죄에 대한 위헌판결이 난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을 촉구했던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판결 소식을 들은 뒤 환호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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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혼인 관계는 현실의 벽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자녀의 출생신고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림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에서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동성동본의 결혼은 한동안 해결되지 않는 숙제로 남았다.


문제는 동성동본 결혼 불가 논리의 결정적 허점을 우리 사회가 쉬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 중기까지 성씨를 지닌 사람은 인구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양반 수와 함께 급증했던 것이다.


돈 주고 족보에 이름을 올리고 다른 사람 성씨를 사들이면서 특정 동성동본이 수백만 명까지 이르는 결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애초부터 피가 섞이지 않은 인물이 동성동본이라면 결혼으로 유전질환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전제 자체는 흔들리고 만다. 모호한 도덕성으로 철옹성을 쌓으려 했던 동성동본 금혼의 역사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헌재는 동성동본 금혼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민법에 8촌 이내 인척의 결혼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안전장치가 있다는 점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친일 청산에는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담긴 2013년 7월25일 헌재의 결정(2012헌가1)도 의미가 남다른 판단이다.


헌재는 '친일재산귀속법'이 비록 소급 입법이라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김 변호사는 "환수된 친일 재산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친일재산귀속법 합헌 결정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면서 "친일 청산은 여전히 정당하다는 결정 이유가 돋보이는 판단이었다"고 평가했다.


'집회의 자유'와 관련해 낮과 밤을 구분해야 할까. 이는 오래된 논쟁이자 중요한 논쟁이다. 과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이후의 시위는 불법이었다. 해가 졌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타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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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이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2014년 3월27일 헌재의 결정(2010헌가2)이 바로 그것이다.


헌재는 해가 진 이후 시위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의 집시법에 대해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 법이 개정될 때까지 일정 기간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해가 진 이후'라는 모호한 규정을 근거로 처벌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헌재의 결정은 합리적 판단일 수 있다.


문제는 헌재가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해가 진 이후부터 자정까지로 시위 허용의 기준을 뒀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당일 자정(24시) 이후의 시위는 불법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는 24시라는 기준이다. 왜 24시가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헌재가 24시라는 기준점을 설정했을 때 국회에서 이에 근거해 법률을 제정하는 것도 문제다. 헌재가 위헌 판단을 넘어 '입법 기능'까지 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왜 24시가 시위의 합법성을 따지는 기준이 됐는지 헌재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며 "적어도 집시법에 대한 한정 위헌 결정은 헌재의 '내 마음대로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헌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는 법조계의 논쟁이 되고 있다. 헌재의 결정 중 판단의 적절성을 놓고 정치적·법적·사회적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 사안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헌재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은 헌정 질서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판단을 구해야 할 사회 현안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헌재의 권위가 훼손되면 합리적 판단을 주저하게 되고 사회갈등은 더 확산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헌법 정신에 근거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줄 때 대한민국은 더 나은 사회로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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