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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위법(違法) 소득의 합법(合法) 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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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회사의 대주주 겸 대표자인 갑(甲)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약 30억원을 횡령했다. 이후 갑은 위 횡령 사실을 숨긴 채 을(乙)에게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한 후 돌연 잠적했다. 2019년 A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갑의 횡령 사실이 발각되었다. 과세관청은 위 30억원에 대해 대표자 인정상여 처분을 해 A 회사에 근로소득 원천세 약 12억원을 납부하도록 했다. 가상의 사례지만, 기업 인수인이 종전 경영자의 위법행위로 인해 곤경에 처하는 경우로 실제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자 횡령의 경우에는 특이한 방식에 따라 대표자의 횡령금액을 근로소득으로 의제하여 횡령의 피해법인에 거액의 원천(소득)세 부담을 지운다. 대표자는 횡령금에 대해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해 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금전의 차용자와 그 지위가 유사함에도 횡령 시점에 바로 소득이 귀속된 것으로 보아 횡령의 피해법인을 과세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세구조는 얼핏 보더라도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소득구분 및 귀속시기는 횡령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위법소득에 기본적으로 공통되는 문제이다.


위법소득이란 절도, 공갈, 사기, 배임, 뇌물수수, 도박개장, 매춘, 마약밀수 등 불법 행위로 얻은 수입을 말한다. 독일에서는 1차대전 이후 패전 보상금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금지되고 있던 매춘행위에 대한 과세를 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국가가 위법행위를 제재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과실(果實)의 분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도덕론적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공평과세의 이념과 위법소득자를 적법소득자에 비해 우대하는 불합리한 결과의 방지 필요성이라는 이유에서 위법소득에 대해서도 과세를 해야 한다는 원칙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됐다. 우리 판례 역시 과세소득은 경제적 측면에서 담세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족하고 그 소득을 얻게 된 원인관계의 적법ㆍ유효 여부를 가리지 아니한다고 하여 위법소득 과세 긍정설을 취하고 있다. 우리 소득세법은 뇌물, 알선수재 및 배임수재에 의해 받은 금품을 과세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조세특례제한법은 불법한 정치자금에 대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과세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우리 소득세법은 법률에 열거된 소득만을 한정적으로 과세하는 소득원천설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위 열거된 위법소득 외에 예컨대 절도, 강도, 사기, 공갈, 배임 등에 의해 얻은 이익은 소득세가 부과될 수 없음이 원칙이다. 또한 위법소득이 그 공여자에게 반환되거나 몰수ㆍ추징 판결로 인해 박탈되었다면 과세 대상이 될 수 없고, 이미 세금을 납부했을 경우에는 후발적 경정청구의 대상이라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위법소득에 대한 과세 필요성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우리 세법의 위법소득에 대한 과세는 그 체계정합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몇 가지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뇌물, 알선수재, 배임수재로 얻은 금품은 기타소득으로서 소득세 과세대상이지만 절취, 강취, 공갈, 편취된 소득은 소득세법상 과세대상으로 열거되어 있지 않다. 또한 불법 정치자금은 소득세가 아닌 증여세의 과세대상이 된다. 대표자의 횡령소득은 법인세법상 소득처분 제도를 매개로 인정상여로 보아 근로소득이 과세되는데, 횡령금이 근로의 제공과 대가관계 또는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근로소득으로 의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있다. 현행 소득세법이 소득원천설에 따른 제한적 소득개념을 유지하는 이상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위법소득을 '기타소득'으로 포섭하는 소득세법의 개정이 긴요해 보인다. 또한 위법소득을 얻기 위해 지출된 비용을 어느 범위까지 필요경비로 보아 과세표준에서 공제할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판례는 일응의 기준으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제시하고 있지만 법적 안정성 및 예측 가능성의 제고를 위해 보다 명확한 규준의 설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세체계의 문제점이 도드라지는 영역이 바로 횡령소득에 대한 과세이다. 판례에 따르면 대주주 겸 대표자가 횡령을 한 경우에는 소득처분에 의한 근로소득 과세가 가능하고 그 금액은 손금불산입되는 반면, 피용자에 불과한 자가 횡령한 경우에는 피해법인이 손해배상청구권을 보유한다는 이유에서 소득처분을 허용하지 않고 그 청구권이 소멸되는 시점에 손금산입도 될 수 있다. 이처럼 횡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세무상 취급의 중대한 차이가 있는데, 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쉽지 않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전자에 대해서는 횡령범죄의 피해법인에게 피해액의 손금불산입 뿐만 아니라 원천징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점도 꾸준히 비판된다. 판례 법리 상으로는 대표자 등의 횡령 사안에서 향후 횡령소득이 피해법인으로 회수된다고 하더라도 그 원천징수의무는 소멸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가세된다. 현행 세법 하에서 재산범죄의 피해자에게 원천징수의무를 부담시키는 경우는 횡령이 유일하다. 입법론적으로 횡령금에 대한 과세 필요성은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의 과세대상을 추가하는 것으로 보완하고, 피해법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원천징수의무를 면제해 주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입법례도 이에 부합한다.


위법소득 과세제도의 전반적 개선을 위해서는 해외 입법례도 참고할 만하다. 순자산증가설을 채택하는 미국에서는 위법소득을 과세대상으로 긍정한 1961년 연방대법원의 James v. United States 판결 이래로 체계적으로 법령을 정비하여 왔다. 미국 세법은 원칙적으로 위법소득으로 얻은 금품이 반환되거나 배상되면 그 금액이 당해 연도 소득에서 차감되도록 하면서도, 예외적으로 몰수의 경우에만 비용 공제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명문 규정을 두었다. 소득원천설을 채택한 독일에서는 조세기본법에서 위법소득에 대한 과세를 긍정한다는 명문 규정을 두어 해석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했고,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얻은 이득을 반환하면 손실에 대한 취급의 예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같이 위법행위로 얻은 소득도 원칙적으로 모두 과세의 대상으로 삼되, 몰수ㆍ추징 등으로 이득이 상실된 경우에는 경정청구 또는 감액경정 절차에 따라 납세자가 구제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그 반면, 현행 우리나라 세법은 위법소득 과세에 대한 많은 부분에서 침묵하고 있다. 그 귀속시기와 소득구분에 관하여 다툼의 소지가 많은 위법(違法) 소득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입법례를 궁구하여 개별 법령에서 명확하게 규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방안이 납세자의 불필요한 조세순응비용을 최소화하는 공평ㆍ타당한 합법(合法) 과세의 첩경일 것이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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