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데스크 칼럼] 유튜브 유감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데스크 칼럼] 유튜브 유감
AD
원본보기 아이콘


백종원이 짬뽕라면을 아무리 맛있게 끓인들 백문(百文)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파 송송, 계란 탁, 보글보글 3분'이라고 친절하게 써놔봐야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일 뿐. 이것이 문자로 된 레시피의 한계다. 저 글자들 사이에선 좀처럼 음식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동영상 레시피라면? 백종원의 짬뽕라면은 역시 동영상으로 봐야 제 맛이 난다.


때론 동영상이 문자보다 강렬하다. 나만의 화장법이나 패션은 장문의 글보다 한편의 영상이 와 닿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공략도 두꺼운 매뉴얼이 짧은 영상 하나를 못 당한다.

동영상의 매력은 이미 유튜브가 입증하고 있다. 유튜브 공동 창업자인 조드 카림이 '동물원에 있는 나(Me at the zoo)'라는 19초 분량의 영상을 시험삼아 올린 것이 2005년 4월23일.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유튜브는 블랙홀처럼 전 세계의 콘텐츠를 빨아들인다. 한달 접속자 19억명, 하루 접속자 3000만명, 하루 시청 동영상 50억개, 1분당 업로드 동영상 300시간.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다. 정말 그럴까?


여기 또 다른 시선이 있다. 미국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가 10년 전 펴낸 <책 읽는 뇌>는 이렇게 시작한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발명' 두 글자.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한 것이 10만년 전이고 문자가 발명된 것은 대략 8000년 전이다. 인류는 애초부터 글을 읽는 DNA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문자가 생겨나고 '읽기의 힘'이 쌓이면서 인류 문명은 꽃을 피웠다. 그런 점에서 문해력(文解力)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라 할 만하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글자는 영상이나 게임보다 뇌를 더 즐겁게 자극한다. 글자를 이해하는 측두엽, 상황을 파악하는 전두엽, 감정을 느끼는 변연계 등 글을 읽는 순간 뇌의 모든 부위가 활성화된다. 정재승 KAIST 뇌공학과 교수는 '읽기의 힘'에 대해 이렇게 극찬했다. "독서가 뇌에 가장 훌륭한 음식인 이유는 풍성한 자극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유튜브를 향한 불편한 시선이 교차한다. 인류가 디지털 콘텐츠에 심취할수록 우리 뇌는 '읽기의 힘'을 잃어간다는 우려에서다. 셰리 터클 MIT 교수는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증가하면서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이 40%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0년 전 '읽기의 힘'을 강조했던 매리언 울프가 10년 뒤 펴낸 <다시, 책으로>에서 뇌의 퇴화를 경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읽는 뇌의 회로 안에는 은하수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연결이 있다. 단어 하나를 읽을 때마다 수천, 수만개의 뉴런(뇌 신경세포)이 활성화"되는데 글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비판적인 분석력과 독립적인 판단력이 감퇴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경고다. 이것은 문자의 위기일까, 인류의 위기일까. 아니면 일부 학자들의 과도한 우려일까.


얼마 전 발표된 구글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9% 증가한 389억 달러(약 46조187억원)를 기록했다. 어닝 서프라이즈의 배경은 단연 유튜브다. 유튜브가 가짜뉴스와 혐오뉴스 등으로 얼룩지고 있지만 동영상 신드롬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백종원의 짬뽕라면처럼 유튜브 동영상은 지극히 대중적이고 자극적이며, 중독성이 강하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읽기의 힘'을 강조하는 것은 호모사피엔스의 후천적 성취에 대한 경외심이자, 동영상은 어쩌지 못하는 문자의 우월함 때문이다. 우리가 간과해서 그렇지, 텍스트는 그 자체로 놀라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헤밍웨이의 6단어 단편소설처럼.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이정일 4차산업부장 jaylee@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12년만에 서울 버스파업 "웰컴 백 준호!"…손흥민, 태국전서 외친 말…역시 인성갑 "계속 울면서 고맙다더라"…박문성, '中 석방' 손준호와 통화 공개

    #국내이슈

  • 디즈니-플로리다 ‘게이언급금지법’ 소송 일단락 '아일 비 미싱 유' 부른 미국 래퍼, 초대형 성범죄 스캔들 '발칵' 美 볼티모어 교량과 '쾅'…해운사 머스크 배상책임은?

    #해외이슈

  • [이미지 다이어리]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푸바오, 일주일 후 中 간다…에버랜드, 배웅시간 만들어 송파구 송파(석촌)호수 벚꽃축제 27일 개막

    #포토PICK

  • 기아, 생성형AI 탑재 준중형 세단 K4 세계 첫 공개 벤츠 G바겐 전기차 올해 나온다 제네시스, 네오룬 콘셉트 공개…초대형 SUV 시장 공략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코코아 t당 1만 달러 넘자 '초코플레이션' 비상 [뉴스속 기업]트럼프가 만든 SNS ‘트루스 소셜’ [뉴스속 용어]건강 우려설 교황, '성지주일' 강론 생략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