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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열의 體讀]당신은 속고 있다, 가짜 돈에 몹쓸 희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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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기요사키
진정한 부자 되기 위한 금융안내서

金ㆍ銀은 신의돈..달러는 가짜돈
1200조달러 파생상품 여전히 활개
돈 찍어낼수록 더 가난해지는 사람들
더 이상 눈과 귀를 믿을 수 없는 세상
진위 구별, 생사도 가를 중요한 일

<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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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72년, 미군 장교 두 명이 베트남 적지에 있는 금광을 찾아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금을 싸게 사기 위해. 베트남 연안 항모에서 헬리콥터 조종사로 있던 그들은 적과의 전선에서 수십㎞ 안쪽 마을까지 헬기를 직접 몰고 갔다. 진흙투성이 논에 헬기를 착륙시킨 뒤 마을 주민들과 여유롭게 인사를 나누며 현지에서 금 거래상으로 일하는 시골 여인을 찾아갔다. 진짜 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지만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금 현물가가 온스당 55달러인 것은 알았다. 금값을 두고, 그들은 여인에게 흥정을 시도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까지 온 만큼 어느 정도 깎아줄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40달러를 제시했지만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느 필부의 호기로운 모험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재테크 책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가 직접 털어놓은 본인의 젊은 시절 얘기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투자자ㆍ교육자를 자처하는 그는 20세기 말 내놓은 부자 아빠 시리즈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업가로 한창 잘나가던 2000년대 중반 함께 책을 쓰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페이크'에서 그는 군 복무 시절 생애 처음으로 금을 산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는 "그때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라며 "금과 미국 달러의 관계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뒤로 금과 미국 달러, 가짜 돈에 대해 배우고 익힐수록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요사키는 왜 목숨을 담보로 금을 사러 갔을까. 결심한 계기는 바로 전 해,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미국 달러화의 금본위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되면서 달러와 금의 가치를 연동시켰는데, 이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데다 미국 달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믿음이 낮아진 데 따른 조치였다. '일시적' 조치였지만 바로 이듬해 불거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생겨나 시나브로 몸집을 키웠듯이.


기요사키는 그 스스로 금을 보유하는 행위를 두고 투자나 거래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금 혹은 은을 '신의 돈'이라 일컫는 것도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1900년 이후 최근까지 금과 비교해 주요 화폐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게 명징한 근거다. 아울러 금융 거래 시 통용될 수 있는 교환 매체이자 가치 측정이 가능한 회계 단위,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진짜 돈이라고 한다면 금화나 은화야말로 거기에 해당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달러와 같이 중앙은행이나 정부 혹은 극소수 엘리트 계층이 찍어내는 돈이야말로 가짜 돈이라는 얘기다. '페이크'는 투자가이자 사업가, 진짜 금융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교육자로서 기요사키가 수십 년간 체득한 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가짜에 대한 집요한 추적기인 셈이다.


돈을 찍어낸다는 건 과거부터 있었던 일이다. 멀리는 고대 중국이나 로마제국부터 가깝게는 파산ㆍ쿠데타를 겪고 있는 산유국 베네수엘라까지 화폐, 즉 저자가 말하는 가짜 돈이 마구잡이로 생겨난 적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등 최상위 엘리트 계층이 거론하는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이나 양적완화 같은 그럴듯한 표현도 돈을 찍어내는 행위를 점잖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소소하게는 우리가 은행에 돈을 예금한 후 붙는 이자, 신용카드를 쓸 때 필요한 신용 그 자체, 자동차ㆍ주택을 살 때 이용하는 융자도 큰 틀에서 보면 돈을 찍어내는 효과를 낸다.

로버트 기요사키, '페이크'

로버트 기요사키, '페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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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2008년에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이러한 가짜 자산을 활용한 소수 엘리트 금융공학자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금융공학을 통해 파생상품의 파생상품이 잇따라 생겨났다는 얘기다. 그는 "2007년 파생상품시장의 총 규모는 약 700조달러였고 2008년 이 '대량살상무기'가 폭발해 세계경제를 거의 붕괴시켰다"면서 "2018년 현재 파생상품의 총 가치는 1200조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돈을 찍어내는 것은 지속 가능한 번영을 가져오지 못한다"면서 "돈을 찍어내면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질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새 책은 저자가 20여년 전 쓴 부자 아빠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부자는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저축을 하는 사람은 패배자다" "당신의 집은 자산이 아니다" 등 당시에는 반감을 샀을 법한 내용이 시간이 흘러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 짓고 진짜를 취하는 한편 가짜를 멀리하려는 태도가 전통적인 보수주의자의 그것이라고 본다면, 저자의 이 같은 인식은 일관성을 지닌다.


돈이나 자산, 부를 터부시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에 가깝다는 뜻이다. 좋은 학교에 가서 취직하거나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빚을 갚기, 주식시장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같은 가난한 아빠의 가르침이 잘못됐다는 신념도 20여년 전과 그대로다. 신의 돈(금ㆍ은), 정부의 돈(달러ㆍ유로 등)은 아니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통화(암호화폐)를 대중의 돈이라 칭하면서 높이 쳐주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신뢰도 측면에서 인간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이 한결 더 높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반드시 좇을 필요는 없겠지만 가짜가 넘쳐나는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 왔는지를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 가독성을 충분히 높인다. 저자는 "간단히 말해 우리는 더 이상 눈과 귀를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오늘날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확인하는 행위는 부유와 가난, 전쟁과 평화, 나아가 심지어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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