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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금리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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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최근 끝난 미국 드라마 '왕좌의게임(The Game of Thrones)'의 유명한 대사다. 주인공 중 북벽의 방어를 책임진 네드 스타크는 가훈이기도 한 이 말을 외치며 다가 오는 어둠의 시대를 맞는다. 최근 미 하원에 출석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얼굴에서도 네드 스타크의 결연한 표정이 엿보였다. 그는 이날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단어를 26회나 반복하며 미 경제의 위기를 경고했다.

네드 스타크가 북벽을 방어하는 야경대를 강화해 인류를 악마로부터 보호하려 했다면, 파월 의장이 불확실성 속 미 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선택한 무기는 기준금리 인하인 듯하다. 사실 Fed는 이미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인내심(patient) 정책을 폐기하고 경기 확장세 유지를 위해 '적절한 대응(act as appropriate)'에 나서겠다며 금리 인하를 위한 애드벌룬을 뛰웠다. 이날 청문회에서 파월 의장은 "더 완화적인 통화 정책의 근거가 강화됐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실 현재 상태의 미 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121개월째 사상 최장기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고 실업률은 3.6%(5월말 기준)로 50년래 최저 수준을 기록중이다. 그럼에도 파월 의장은 왜 미 경제의 '겨울'을 얘기할까. 그는 6월 소비자신뢰지수ㆍ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 등의 지표 악화를 근거로 미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던 저물가에 대해서도 "계속될 우려가 있고, 일본과 같은 저성장 장기화 위험성도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눈길을 끄는 점은 파월 의장이 금리인하의 성격을 '보험적(insurance cut)'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실제 경제ㆍ금융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위험관리 차원에서 현 경제 상황에 적합한 수준 이하로 금리를 미리 내리겠다는 얘기다. 미국은 지난 1995년과 1998년에도 이같은 보험적 금리 인하를 단행한 적이 있다. 1995년의 대내외적 경제 지표 부진이 가시화됐던 상황에서 7개월간 3회에 걸쳐 6.0%였던 금리를 5.25%로 0.75%포인트 낮췄다. 1998년엔 한국 등 아시아 외환위기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역시 세차례에 걸쳐 0.25%씩 인하했었다.

문제는 이같은 보험적 금리 인하가 미국 경제를 침체로부터 구할 수 있느냐가 여전히 논란거리라는 점이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미 국채 장단기물 스프레드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향후 12개월 내 경기 침체 가능성은 6월 현재 32.88%대에 달한다. 2009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다. 30%대를 돌파한 것은 1960년대 이후 모두 9번인데, 이중 미국이 실제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은 것은 1967년 딱 한 번이다.


일각에선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카드를 쉽게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미ㆍ중 무역 전쟁의 유동성, 미국 경제의 여전히 견고한 지표를 근거로 반대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앤소니 그리산티 GRZ에너지 설립자 겸 회장은 최근 미 CNBC에 "금리를 내렸을 때 미ㆍ중 무역협상이 갑자기 타결되면 경제 전반의 상황이 변화돼 Fed의 정책적 신뢰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상황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줄기찬 금리 인하 요구가 미국 정치권과 금융계에서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핸드(수상)에 임명된 네드 스타크는 왕좌를 노린 정치적 모략에 휩쓸린 채 딸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배신 자백'을 했지만 왕의 변심에 결국 목이 잘리고 만다. 파월 의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4년 임기를 다 마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해임 권한은 나한테 있다"며 벼르고 있다.


미국 경제의 향배를 둘러 싼 '금리의 게임'은 결론이 어떻게 날까, 궁금하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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