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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독서] 블록체인, '투기'보단 '플랫폼'으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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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공무원이 바라본 블록체인..'플랫폼 혁명'의 중심
탈중앙화와 분권체계 강점이지만.. 국가권력과 조화 중요

[기자의 독서] 블록체인, '투기'보단 '플랫폼'으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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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우리나라에서 블록체인(Blockchain)이란 단어는 2017년 비트코인(Bitcoin) 광풍을 극심하게 겪은 이후부터 꽤나 부정적인 단어로 읽히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의 핵심기술로 알려진 블록체인은 어느 포털사이트에서나 검색어로 치면 여전히 코인 테마주 등 '투기'와 맞물린다. 그러다보니 금융업계나 IT업계를 제외하고 일반 사석에서조차 쉽사리 꺼낼 수 있는 주제는 아닌 대상으로 전락했다.


'블록체인 플랫폼 혁명을 꿈꾸다'는 이러한 암묵적 금기를 깨고 미래 경제의 핵심기술로 손꼽히고 있는 블록체인에 대한 터부시를 멈추자는 의도의 책이다. 그렇다고 비트코인 거래소 관계자나 핀테크(Fin-tech) 관계자가 쓴 책도 아니다. 기획재정부에 19년째 다니고 있는 공무원이 쓴 책이다. 백과사전식으로 블록체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부문들을 찬찬히 살펴주면서도 기존의 책들과 뭔가 다른 입문서의 분위기가 나는 것은 저자의 이 직업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는 처음부터 비트코인과 분리해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책임을 밝힌다. 그리고 2017년 언저리에 쏟아지던 블록체인 관련 책들과 달리 과장된 표현이나 무조건적인 장밋빛 미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챕터는 매우 세분화돼있고, 각 챕터의 내용도 길지 않으며 기술적으로 명시됐을 뿐이다. 저자 스스로가 밝혔듯 정말 자신이 궁금해서 쓴 책임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호기심 어린 공무원이 들려주는 블록체인 기술은 한마디로 '플랫폼 서비스'다. 단순 비트코인 결제를 위한 시스템, 송장처리 등을 위한 보안 수단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블록체인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정의하고 있는 블록체인 기술은 단순히 금융가에서 전통적으로 부르는 "비가역적 데이터 장부 기반 분산형 관리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분산형 관리기술을 활용해 전통적인 산업분야에서 결합되지 못했던 다양한 기술들이 결합될 플랫폼으로서 역할이 앞으로 블록체인이 더 많이 활용될 길임을 주장하고 있다.


예전의 경제체제는 한마디로 파이프라인처럼 구성돼있었고, 각 분야마다 중간 매개체들을 통해 이어져있었다. 돈이 오고가는 경우에는 은행이,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중개인이 있듯 어떤 시장에서의 거래든 중개나 신용보증을 할 중간관리자가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결합될 수 있는 분야들도 서로 연관성이 깊은 분야들끼리로 한정됐고, 한 번에 할 수 있는 거래의 규모나 횟수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모든 경제활동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경우엔 이런 제한들이 풀린다. 거래 시스템 자체가 송장과 보안, 보증을 모두 책임지는 이 구조상에서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들끼리도 결합해 새로운 상품을 구성하거나 서로 거래가 가능하다. 또한 중간에 각종 정보들이 집합된 허브(Hub)가 필요 없기 때문에 해커들에 의한 공격이나 보안상 문제도 쉽게 발생해지기 어렵다. 해킹을 위해서는 모든 거래주체들에게 분산된 정보를 모두 모아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분산의 묘미를 단순히 상거래뿐만 아니라 전자투표 등 정치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이 모든 장밋빛 가능성이 블록체인 시스템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임도 밝히고 있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강점인 탈중앙화와 분권체계는 기존에 갖춰진 국가주도의 금융시스템과 큰 거리가 있고 치명적 문제가 발생할 때 바로 처리하기 힘들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비트코인이 보여준 거래자간 익명성의 문제와 이것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악용돼온 점 역시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저자는 이 부분을 강조한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큰 취약점은 공익의 최종대변자로 형성된 정부가 개입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실패를 강제적으로 조정할 살아있는 권력이 기능할 수 없는 시장이란 점이 계속되는 우려를 낳는다는 것. 이런 형태의 시장에서는 자본주의 초기 체제에서 발생했던 독과점이나 금융경색, 정보의 불균등과 같은 각종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확실히 방지할 수 있는 보안장치들의 마련이 없다면 결국 블록체인 역시 시장의 버림을 받을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다시금 저자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위험성은 마땅히 강조돼야할 부분이지만, 화폐금융결제 시스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쓰는 법정통화들도 문제없이 출발했던 건 아니다. 지폐는 11세기 중국 송(宋)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이는 지역 상인들이 사용하던 각종 어음들에 대해 송나라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겠다 선언하면서 시작된 개념이다. 당시 통화는 구리로 만든 동전이었고, 발행량이 8억 개를 넘어가면서 수백만 냥이 넘어가는 큰 거래의 경우, 주조비용은 물론 운송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발생했다. 이를 막고자 만든 게 지폐였다.


지폐는 세계 최초의 가상화폐였다. 지급보증을 설 국가가 무너지면 비트코인만큼이나 아무 가치도 없는 종잇조각으로 전락한다. 지금이야 국가 붕괴를 쉽사리 생각하기 어렵지만, 송나라가 존재하던 11~13세기만 해도 국가멸망은 일상다반사였다. 실제 송나라가 몽골제국의 침략으로 무너진 이후 몽골이 세운 원(元)나라가 재정확충을 이유로 이 지폐를 남발하면서 어마어마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 인플레이션이 원나라의 사위 국가인 고려왕조로까지 전가되면서 결국 두 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이때 생긴 지폐에 대한 안 좋은 역사적 기억은 400년 이상 이어졌고, 이로 인해 조선왕조에 상평통보란 화폐가 17세기나 돼야 정착하게 됐다. 세종대왕이 30여 년간 민간에 지폐사용을 강요하고, 지폐로 세금을 못 내겠다는 백성들을 처형하면서까지 정착시키고자 했으나 결국 정착시키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금융시장 속에선 저자의 말대로 중앙정부를 무조건적 선이라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여전히 국가실패지수가 높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독재국가들에서 법정화폐는 휴지조각처럼 여겨진다. 아예 돈을 접어서 가방을 만들어 팔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이나 자고 일어나니 2억 원이 1원으로 전락했다는 짐바브웨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런 불편한 상황들까지 감안하고 읽는다면, 이 책은 나무랄 데 없이 잘 정리된 블록체인 입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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