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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내가 할일, 네가 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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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지난해 봄, 화장실에 휴지통 없애기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지하철역 같은 공공장소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건, 백화점이건, 음식점이건, 사무실빌딩이건 가리지 않고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버리기'가 시행됐다. 성인 허리춤까지 오던 큼지막한 화장실 내 휴지통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생리용품수거대가 앙증맞게(?) 벽에 걸렸다. 뒤처리를 한 휴지들이 오물이 묻은 채로 뚜껑조차 없는 휴지통에서 얼굴을 내밀기 일쑤이고, 휴지는 반드시 휴지통에 버려주세요. 변기가 자주 막혀요 ㅠㅠ '라거나, '화장실 수압이 낮습니다. 휴지를 변기에 버리면 서로 민망한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반드시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는 읍소 반 협박 반인 경고문까지 내거는 나라이니 이쯤 되면 '문화혁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근래 내가 가본 여러 영업점의 화장실엔 거의 대부분 뚜껑 없는 휴지통이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경고문을 버젓이 내건 곳도 적지 않다. 휴지통엔 뒤처리한 휴지들이 버티고 있고.

# 장면2

지난해 12월부터 자동차전용도로뿐 아니라 시내에서도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이까지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전 좌석 안전벨트제가 시행됐다. 위반 시 운전자에게 3만원(13세 미만 탑승자는 6만원)의 과태료를 부여한다는 강제조항과 함께. 수십 년 전 파리 출장에서 나를 안내하던 지인이 시내 주행할 때 뒷좌석에 앉아도 반드시 벨트 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신신당부하던 기억이 오버랩되며 슬며시 웃음까지 나왔다.무산되기는 했지만 택시까지 유아용 보조의자 의무화를 들먹일 정도로 당국이 굳건한 의지를 내보인 만큼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의무화가 정착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런데 근래 내가 이용한 택시 가운데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 멘트를 들려준 기사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장면3

지난해 4월 중국의 수입 중단으로 일어났던 폐비닐과 스티로폼 등 재활용쓰레기 대란이 관련 업체에 대한 정부지원 등으로 가까스레 수습되며 다시 폐비닐은 재활용쓰레기로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재활용 처리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는 검은색 비닐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대형 슈퍼마켓에서 무상 지급되는 비닐봉투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동네 제과점조차 비닐봉투값을 또박또박 받는다.

그런데 가정에서 나오는 비닐류를 수거하는 재활용쓰레기업체들은 여전히 흰색 혹은 투명비닐만 선호해 오늘도 주부들은 버젓이 재활용마크가 달린 인쇄된 비닐포장지들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고 있다.


이것이 일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생활문화의 현주소다. 혹자는 용두사미 격인 정부의 행정력을 탓하고, 혹자는 과태료가 가볍거나 아예 없는 법과 제도를 탓한다. 정부는 단속인원의 절대 부족을 내세우고, 정부의 비판자들은 집행의지가 빈약하다고 나무란다. 서로 네가 할 일을 하지 않아 이 꼴이라는 식이다.


35년 전 생전 처음으로 유럽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른 화장실문화'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한 해 우리나라의 해외 출국자는 1800만명이 넘는다. 여행지에서는 그들의 생활문화를 곧잘 따라하면서도 정작 솥단지를 걸고 사는 제 땅에서는 정해진 법과 규칙마저도 단속이 없으면 모른 체한다. 정부를 위해서 뒤처리용 휴지를 변기에 버리고, 택시기사를 위해서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자손을 위한 것일 뿐이다. 생활문화란 어떤 강제력을 동원해도 일순간에 달라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지만 끈질긴 실천으로서만 가능하다. 법과 제도, 이의 실천을 강제하는 단속과 벌칙들은 우리를 이끄는 최소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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