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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北] 북한은 왜 죽은 자를 소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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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노딜 이후 리더십·정치적 위기 몰린 김정은
'경제발전-비핵화 교환 노선' 내부설득 쉽지 않은 듯
과거 '충신' 강석주·김양건 추모기사로 결사옹위 강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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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표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독재적 권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 어떤 정치적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공포정치와는 별개로, 하노이 '노딜' 이후 그가 정치적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징후는 뚜렷하다.


지난 12일은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1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를 기리는 기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날 논평 기사를 통해 6·12 정신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핵 보유 의지를 암시했다.

그런가하면,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톱다운식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포석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지난 17일에는 북한 노동당출판사가 발간한 '강습제강'이라는 문건이 미국의소리(VOA)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북한군 장성 및 장교용 강의자료인 이 문서는,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는커녕 핵 전력 국가로 거듭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각자 모순되는 파편적 사실들은, 김 위원장이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하나의 진실을 보여준다.


◆김정은의 '비핵화·경제총력·외교' 노선이 도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4월 노동당 제7기 3차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말했다. 육성으로 사상 처음 '비핵화'를 약속한 것이다.


2019년 2월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두번째로 만나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66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경제발전과 비핵화를 교환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


노딜 이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3월 15일 평양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은 상당한 내부진통 끝에 내려졌음을 강조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이런 기회(하노이 회담)를 만드시기 위해 국내의 많은 반대와 도전과도 맞서오셨다"면서 "사실 우리 인민들, 특히 우리 군대와 군수공업 부문은 우리가 절대로 핵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께 수 천 통의 청원 편지들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그토록 어렵게 만든 핵을 포기하겠다는 주장은 북한 내부의 군부·강경파들을 불만세력으로 만들고 있으며, 김 위원장의 '경제건설 노선'은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동해상에서 진행된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5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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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선언 1주년을 맞아 노동신문이 북·미협상과 관련한 기사를 내지 않았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대신 신문은 1면에 길고 긴 논설 기사를 냈다. 경제총력 노선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찼다.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완성하며 대대손손 전쟁이 없는 나라를 만들었면서 핵 무력을 영구화를 주장하며 사실상 6·12 정신을 부정했다.


신문은 "국가경제력을 발전시키는데서 나라들사이의 경제기술적협조와 교류, 대외무역은 필수적"이라면서도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자체의 힘 과 기술, 자기 나라의 자원에 의거하여 경제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것을 근본원칙으로 내세우고 모든 것을 여기에 지향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세계에서 다른 나라의 기술과 자금에 매여있는 경제, 하청경제는 설사 번쩍거린다 해도 바람앞의 등불과 같으며 자기 나라 인민의 존엄은 고사하고 밥줄조차 지켜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진로변경'의 대가로 '번영'을 선사하겠다는 패권주의자들의 유혹 또한 매우 집요하였다"고 했다.


'경제총력 노선'에 밀려 폐기된 '핵·경제 병진노선'을 복구시키겠다는 메시지다. 신문은 "김정은 동지도 인간이시고 그 누구보다 생활을 사랑하신다"면서 "우리 원수님께서도 정신·육체적 과로가 겹쌓이면 휴식을 하셔야 한다"고 했다.


신문은 김 위원장이 "국방과학자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시고 최단기간내에 군력을 높이기 위한 길도 모색하셨다"면서 군사행보에 대한 강조를 거듭 드러냈다. 반면 해당 논설에서 경제행보에 대한 서술은 제한적이었다.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은 20일(현지시간) 미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를 통해 "평양에서는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면서 북한 내부에서 김 위원장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둘러싼 치열한 당파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봤다.


이처럼 수세에 몰린 것은 분명 김 위원장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결단을 결사옹위하려는 반작용도 노동신문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외교 충신' 강석주·김양건 추모 기사의 등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5년 12월 30일 김양건 전 비서를 찾아 조문하는 모습. 12월 31일 자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김양건에 대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충실한 방조자이자 친근한 전우였다"며 "금방이라도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비서의 죽음에 유독 비통함을 내비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5년 12월 30일 김양건 전 비서를 찾아 조문하는 모습. 12월 31일 자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김양건에 대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충실한 방조자이자 친근한 전우였다"며 "금방이라도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비서의 죽음에 유독 비통함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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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문은 두 명의 죽은 인물을 불러내냈다. 2015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양건 전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2016년 식도암으로 사망한 강석주 전 외무성 제1부상이다.


5월 8일, 신문은 '위인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충실한 혁명전우'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김 전 비서를 추모하는 기사였다. 신문은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고 하늘도 머리숙이게 하는 고결한 도덕의리의 정화로…기억속에 깊이 새겨주신 김양건 동지"라고 했다.


6월 10일에는 '위대한 영도자의 품에서 전사의 삶이 빛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나왔다. 북한에서 대미외교의 간판이었던 강 전 제1부상을 다루고 있다.


기사는 "강 전 제1부상에 대해 "확고한 혁명적 원칙성으로 당의 대외정책을 관철하는 전초선에서 활약해온…우리의 승리적 전진을 위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는데 적극 기여한 일꾼"으로 평가했다.


이들이 소환은, 하노이 노딜 이후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외교'를 비판하는 강경파에 대한 방어적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게 칼린 연구원의 분석이다.


또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11일 김 위원장의 2012년 4월 연설을 재인용하는 기사를 실었다.


김 위원장은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다.


해외에 있는 매체까지 동원해 경제노선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그만큼 김 위원장의 비핵화 노선이 수세에 몰려있음을 방증한다고 칼린 연구원은 풀이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 첫날인 20일 숙소인 금수산영빈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응접실에는 주류가 갖춰진 바 형태의 시설도 눈에 띈다. 사진은 22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 장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 첫날인 20일 숙소인 금수산영빈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응접실에는 주류가 갖춰진 바 형태의 시설도 눈에 띈다. 사진은 22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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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김정은의 '흑기사' 시진핑

아울러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도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지키는 차원에서 이뤄진 외교적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무장, 한반도의 핵 무장을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 만든 핵 무기인데'라며, 핵 무장을 영구화하길 바라는 북한 강경 세력이 달가울 리 없다. 김 위원장이 외교적 노선과 협상을 통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견지하는 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편인 셈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번 북·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인내심을 갖겠다"고 한 것에 대해, 시 주석은 "있는 힘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시 주석의 방북날과 그 다음날, 노동신문은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을 지지한다'고 선전하는 글과 사진으로 도배됐다. 그런 점에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의 '흑기사'로서 평양을 찾은 셈이기도 하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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