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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무역대표부 설립을 허(許)하라

최종수정 2019.06.21 12:00 기사입력 2019.06.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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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한국무역대표부 설립을 허(許)하라

왜 지금 한국무역대표부(KTR)의 설립이 필요한가? 결론부터 말하자. 지금 한국의 통상정책은 과거처럼 무역협상을 체결하고 수입규제를 해결하고 국제기구에서의 활동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개발도상국 마인드에서 선진국 마인드로,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상황에 대처하기보다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KTR가 서야 한다. 다자간무역체제가 와해되고, 미ㆍ중 무역 분쟁으로 치장된 주요 2개국(G2)의 패권다툼이 지속되며, 유럽연합(EU)까지 흔들거리는 미증유의 국제무역환경은 마치 1930년대의 혼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오래된 이야기 하나. 1987년 한국무역위원회(KTC) 설립과 관련된 용역을 진행하던 막바지, 수입구제기능의 제도적 근거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필자는 선진국처럼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9조(긴급수입제한조치)를 주장했지만 당시 상공부는 개도국처럼 GATT 18조 B항(국제수지 문제를 이유로 한 수입제한조치)을 원했다. 당연히(?) 상공부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정확히 2년 뒤 한국은 GATT 18조 B항을 졸업했고 그 명칭도 개도국형 '산업영향조사제도'에서 선진국형 '산업피해구제제도'로 바뀌었다. 그로부터 거의 30년 우리는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니다. 산업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개도국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면 그런 마인드는 이제 털어버리자.

중국산 마늘 수입 급증에 대해 한국은 2000년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시행했지만 중국의 막강한 보복조치에 한국은 슬며시 양보를 했다. 2017년 미국이 한국의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했지만 한국은 과거의 중국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찾아보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보복에 한국은 어디 공식항의라도 한 적 있는가? 롯데와 기아자동차의 피해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모든 엉거주춤(?)의 본질은 한 가지다.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상황에 대처하기에 바빴고 공세적 입장에서 시장을 확대하기보다는 수세적 입장에서 상대방의 공세를 받아치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 끼인 소규모 개방경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이제 그런 핑계는 걷어버리자. G2 패권 쟁탈의 시대 미국을 따르자니 중국이 걸리고 중국을 따르자니 미국이 걸린다고? 어차피 양쪽의 요구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고 피해는 보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세를 가다듬고 원칙은 지키자. 상대방의 부당한 무역조치에는 할 말을 하고, 약해지기는 했지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하자. 상대방이 쌍무주의를 선호하면 우리도 쌍무주의를 시행하자. 중국이 한국의 자동차 배터리에 차별대우를 하는데 우리는 왜 중국 전기버스에 보조금을 주는가? 명분과 원칙을 지켜야 G2 패권 싸움의 포연이 걷힌 뒤 새로운 국제무역질서에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우리 주도로 WTO 2.0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돌이켜 보면 우리의 통상정책은 때로는 외교와 결합하거나 때로는 산업과 결합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기의 졸'처럼 부처를 오가는 공무원의 고충은 예외로 하더라도 통상이 외교의 뒤치다꺼리를 하거나 산업 피해에 전전긍긍하느라 실기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대통령 직속의 독립적인 KTR를 만들 때다. 더 이상 미국과 중국에 휘둘리지 말고 적어도 통상에 관한 한 품격을 지키고 원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하나만 더! 만약 정말 만약 가능하다면 KTR로 하여금 남북한 자유무역협정(FTA)이라도 준비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수 확대.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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