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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데모'가 데모에 이바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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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광화문광장을 지나노라면 크고 작은 시위대를 만나게 된다. 언론에서도 연일 시위 소식을 접한다. 가히 '시위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시위가 줄어들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늘어난 느낌이다.


그 시위를 예전엔 흔히 '데모'라 했다. 중학생 때 democracy(민주주의)란 단어를 익히고는 '아, 데모란 말이 여기서 나온 거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데모가 demonstration(시위)이란 말에서 온, 일본식 축약어란 걸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데모란 말이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를 '촛불시위' 하는 식으로 시위가 대신한다.

시위의 사전적 의미는 위력이나 기세를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뜻풀이는 우리 사회에서 다중이 벌이는 시위의 그 열기, 정당성을 온전히 나타내지 못한다. 혼자 주먹을 부르쥐거나 상대에게 눈을 부릅뜨는 것도 시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민주주의를 뜻한다는 '착각'을 빚었던 데모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은 그리스어 demos(민중)와 kratos(지배)의 합성어다. 즉 민중이 지배하는 체제가 민주 정치다. 그러니 시위를 마냥 삐딱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시위는 시민의 불만을 표시하는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선 선거라는 정치적 의사 표현 창구가 있지만 이는 보통 때를 놓치기 일쑤다. 그 때문에 시위를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여주는 징후로 읽고 그 정치적ㆍ사회적 함의에 주목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요즘 빈발하는 시위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도 적지 않다. 최근 이슈가 된 현대중공업 노조의 물적 분할 반대 시위나 타워크레인 노조의 점거 농성을 보자. '생존권 사수'도 그렇고 안전을 이유로 한 '소형 타워크레인 퇴출'은 귀 기울일 만한 여지가 있다. 그런데 '너무 나갔다'라고 여기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지난달 말 현대중공업 노조가 점거한 울산 한마음회관에선 의자며 방범TV, 조명등 등이 박살이 났다고 한다. 과연 의자가 물적 분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소강 상태에 들어간 타워크레인 노조의 파업은 명분이야 건설 현장의 안전 문제라지만 밥그릇 지키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대는 바뀌었다. 권위적 정권은 사라졌다. 대기업이란 거악(巨惡)의 행패도 예전 같지 않다. 반면 노조는 조직이 커지고, 연대의 힘도 단단해졌다. 예전엔 군과 학생이 우리 정치의 주요 변수였지만 이제는 노조에 견줄 만한 영향력을 갖춘 조직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시위 방법은 적법하고 시위 명분은 적절해야 한다. 힘이 세진 만큼 책임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위 행태는 여전하다. 시민의식이 달라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사회에서 '투쟁' 일변도를 고수하는 것은 무리수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보수 정당에서 '좌파 독재'라 할 정도로 노동자 친화 정권하에서 밀어붙이기만 해서 정치적 부담을 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제는 막무가내식 물리력 행사보다는 준법투쟁이 사회적 공감을 얻는 데 더 유효할 수 있다.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는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통상 강경론이 득세하는 군중심리를 경계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민주화도 더 고민해야 한다.


정보화 사회를 분석, 조망한 '많아지면 달라진다(클레이 셔키 지음ㆍ갤리온)'에는 "독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量)이다"란 독물학자의 말이 나온다. 시위(데모)가 민주주의(데모크라시)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막강해진 노조가 하기에 달렸다. 단 무리의 힘만 믿다가는 밥그릇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밥그릇을 깰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김성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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