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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영의 야간비행]동거식물을 찾습니다…"살아있으나 마음을 괴롭히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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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사는 피아니스트 김은진의 에세이집
"살아가는 일, 소중하지만 대단치는 않은 것"

[기하영의 야간비행]동거식물을 찾습니다…"살아있으나 마음을 괴롭히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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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기하영 기자]"동거할 대상을 찾는다. 숨 쉬고 살아 있으나 나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안전한 생명을, 바로 나의 동거 식물들을."


프랑스 파리에서 사는 피아니스트 김은진의 에세이집 '동거식물'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녀가 찾는 동거식물의 기준은 '적당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연약한 듯 보이지만 쉽게 죽지는 않아 보이는'. 즉 '동거'라는 수식어처럼 함께 살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하지만 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식물을 동거인으로 찾는 셈이다. 저자의 동거식물 기준을 읽다보며 어느새 그 기준에 공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동거식물은 저자가 써내려간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다. 책을 읽다보면 '파리',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 보단 '식물을 키우며 느리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저자소개가 훨씬 더 와 닿는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홀로, 그러나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며 스스로의 삶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로 살면서도 타인과 함께 조화로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창가에 화분을 두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던 중에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한다.


강인해서 저자를 외롭게 만들었던 선인장 안드레, 죽음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던 욕실창가의 바이올렛 화분, 만들어진 신에 대한 영감을 줬던 시들지 않는 분홍 장미. 저자는 단순하고 집요하게 자기 삶에 집중하는 식물을 보며 타인을 인정하며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내 몸과 영혼에 가장 중요한 공급이 들어오는 날이 언제인가 면밀히 알아보려 했다. 몸을 살리고 정신을 세우며 영혼이 쉼을 얻는 그 시간은 언제인가, 생각하고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문득 햇빛과 물, 바람과 흙으로 살아가는 나의 동거 식물만큼이나 나 역시 적은 것을 만족하고 단순하게 살아간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흙을 해치지 않으면서 뿌리를 내리며 계절이 돌아오면 자랑 없이 꽃을 피우는 식물의 태도는 살아 있는 동안 남겨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말해주었다.(28쪽)"

복잡한 삶과 까다로운 사람들에 지쳐 동거식물을 찾는 태도는 자칫 삶에 대한 회의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누구보다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삶을 긍정한다. 그녀는 "생활(生活), 그러니까 '살아가는 일'이란 건 소중하지만 사실 대단치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돌멩이처럼 모래처럼, 풀처럼 들꽃처럼, 흔하고 흔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은근하고 아름다운 것이 우리의 생활"이라고 말한다. 죽음 역시 '병도 늙음도 아닌 절망이 쌓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라 규정한다. 그녀가 말하는 절망은 '마음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지나가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을 향해 울고 있는 상태'다.


저자는 '자라서 무엇이 될 거냐'는 질문에 반문한다. 먹고살기 위해 꼭 무엇인가가 돼야만 하냐고, 밥 먹고 잠시 이 땅에 사는 것 정도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면 안 되냐고 말이다. 그녀는 자기만의 울림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 또 우연히 그 울림이 타인에게 닿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무엇보다 의미 있는 삶이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삶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시 배운다. 인간은 이 다음에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자라도 나무이듯, 더 자라도 그저 내가 될 뿐. 그리고 무엇을 먹고 어찌 살아가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나로 인해 어떤 타인이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240쪽)"




기하영 기자 hyk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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