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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도발 맞서 싸운 '제2연평해전 6용사' 6월 호국인물 선정

최종수정 2019.05.31 10:56 기사입력 2019.05.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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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 폐막 하루 앞두고 北 기습 무력도발 감행

부상당한 전우 치료하다 총탄 맞고 쓰러진 박동혁 병장

끝까지 적에게 응전 사격 하다 전사한 서후원 중사


(사진=전쟁기념관)

(사진=전쟁기념관)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전쟁기념관은 제2차 연평해전 전사자인 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을 올해 '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제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 무력도발로 발생했다. 전투가 일어난 날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폐막 전날이었기 때문에 모든 국민의 관심은 한국과 터키의 3ㆍ4위전에 쏠려 있었다.


북한은 오전 10시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기습 도발을 감행했고, 이에 우리 해군 참수리-357정은 3척의 고속정과 함께 출동해 교전규칙에 따라 퇴거 경고방송과 차단기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357정을 향해 선제 기습포격을 가해 순식간에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정장 윤 소령과 조타장 한 상사가 전사했다.

우리 고속정도 즉각 40㎜ 함포와 20㎜ 벌컨으로 응사했으나 함포 사격을 하던 조 중사와 황 중사도 전사했다. M60 기관총 사수였던 서 중사는 갑판에서 끝까지 적에게 응전사격을 하다 전사했다. 의무병 박 병장은 전우를 치료하던 중 전우가 적의 총탄에 쓰러지자 총을 잡고 응사하다가 부상을 당했고, 전투가 끝난 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세상을 떠났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 인근 해역에 있던 우리 해군 고속정도 가세해 북한 경비정에 대응 사격을 했고, 치열한 교전 끝에 북한 경비정이 퇴각했다.


교전 당시 다리가 절단됐음에도 정장 윤 소령이 전사하자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던 부장 이희완 중위(현 해군중령)와 적의 사격으로 왼쪽 손가락이 모두 잘렸지만 한 손으로 탄창을 끼우며 사격을 멈추지 않았던 권기형 상병 등도 함께 조국의 바다를 지켜냈다.


해군은 2008년 제2함대사령부 기지 내에 안보공원을 조성하고 전적비를 건립해 제1ㆍ2연평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또 참수리급 고속정(PKM)의 뒤를 이어 유도탄고속함(PKG)을 건조하면서 1~6번 함의 함명을 6명의 전사자 이름으로 부여했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각각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또한 정부는 윤 소령과 박 병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한 상사를 비롯해 조 중사, 황 중사, 서 중사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서훈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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