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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은유·유머에 숨긴 '봉테일' 비수…'인간에 대한 예의' 세계인 공감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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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황금종려상 봉준호 영화감독
지난 정부 '블랙리스트' 올라...'기생충'에 분노와 울분 담아
빈부격차·실업 등 현실묘사...지극히 한국적 정서로 찬사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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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봉준호 감독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설국열차'에 담은 주제의식이 문제가 됐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보고서는 살인의 추억을 "공무원ㆍ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한다"고 평가했다. 괴물을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며 국민 의식을 좌경화한다"고 분석하고, 설국열차를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긴다"고 단정했다. 감시와 배제의 타깃이 된 봉 감독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창작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했다. "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에게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영화계 누구나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꼬집을 수 없었다"면서 "두 번 다시 벌어지면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새 영화 '기생충'에는 당시 느낀 분노와 울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빈부 격차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과거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이 풍자와 유머로 포장돼 나타난다. 이야기 또한 최초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문제의 근원을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몇몇 장면에서는 작심한 듯 직접적인 상징물을 배치하기도 한다. 제목인 기생충도 같은 맥락이다. 기생충을 뜻하는 영단어 'parasite'는 '다른 이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사람'이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일반적인 서민의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리는데 이런 제목을 붙일 이유는 없다. 다른 정의를 갖다붙여도 다르지 않다. 기생충학은 기생을 '한 생물이 다른 생물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한쪽이 다른쪽에게 해를 입히거나, 상대방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계'라고 규정한다. 생태학에서는 '숙주의 생식력을 저하시키거나 사망을 초래하는 관계'라고 한다. 봉 감독은 경제적 불평등보다 정치적인 맥락에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차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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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기생충의 칸국제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작품이라 해외 관객에게 공감을 사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외 비평가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보냈고, 심사위원단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이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을 충분히 인지했을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그 외피인 양극화나 빈부격차, 실업 등의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는 보편적인 이슈다. 봉 감독은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을 두되 촘촘한 서사구조와 탄탄한 캐릭터 설정, 정교한 미장센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는 "가난한 자와 부자는 우리 주변에 항상 있다. 양극화라는 경제 사회적 단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에 관한 영화"라면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어느 정도 지키느냐에 따라 영화 제목처럼 기생이냐, 좋은 의미의 공생이냐로 갈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정치적 메시지를 찾지 못해도 인지하는데 무리가 없다. 봉 감독이 시종일관 대중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장르에 기대어 긴장을 유발하면서 곳곳에 영화적 재미를 삽입한다. 은유와 아이디어가 어우러진 계산된 표현이다. 자극적인 폭력 장면을 피하는 대신 의외성을 배치해 유머와 페이소스를 전한다. 그는 "무겁고 정치적인 주제를 심각하게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는 영화를 존중한다"면서도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렇게 유머와 코미디가 섞여 있는 것이 좋다. 관객이 터뜨리는 웃음 속에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있는 느낌을 좋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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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은 이를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충고와 비판도 받았다. 살인의 추억의 경우 미제로 끝난 연쇄 살인사건을 조명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신문과 뉴스에 지겹게 나온 사건을 누가 영화로 보겠느냐는 걱정이었다. 괴물을 준비할 때는 괴수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의 제작에 많은 이들이 회의적이었다. 그는 제작비 110억원으로 꿈을 실현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좋은 아이디어로 적절한 리듬과 패턴을 찾아내 제작비 문제를 해결했다.

"1970년대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는 당시 기술과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아이디어로 해결했다. 죠스의 시선으로 해변의 관광객을 비추어 마치 먹잇감을 찾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카메라를 조스의 눈처럼 썼다."


제작비가 많다고 해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노동 환경 개선까지 실천한다. 기생충을 촬영하면서도 아역배우를 보호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했고, 주52시간 근무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그 덕에 오히려 제작비를 절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생충은 100회 이상 촬영한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과 달리 77회차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철저한 준비와 디테일의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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