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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돈' 조일현은 돈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최종수정 2019.04.12 13:09 기사입력 2019.04.1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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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브뤼크네르 '돈의 지혜'…지혜로운 돈에 필요한 건 자유·안정·마음의 평화

[이종길의 가을귀]'돈' 조일현은 돈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영화 '돈'에서 조일현(류준열)은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주식 브로커가 되지만 수수료를 한 푼도 챙기지 못한다. 그 순간 전설의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가 나타나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거래를 제안한다. 조일현은 위험한 조작에 동참하고 순식간에 부자가 된다. 통장에 입금된 돈을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주머니에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돈은 초탈한 태도로 넘어가기 위한 통행증이다. 삶에 유동성이 생기고 하루하루를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2년 '죽음의 집의 기록'에 이렇게 썼다. "돈은 짤랑짤랑 확실한 자유다. 진정한 자유를 빼앗긴 인간에게 돈의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장 폴 사르트르는 젊은 날에 100만 프랑을 가지고 다니면서 친구나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곤 했다고 한다. 돈을 마구 써버리면서 좋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과 물질적 부에 대한 멸시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었다. 한편에는 귀족적인 너그러움, 다른 한편에는 타자를 해방시키는 위대한 영혼이 있었다. 조일현도 비슷하게 베푼다. 가난에 쪼들려 사는 부모나 한순간 집안이 기울어진 친구에게 선뜻 돈을 건넨다. 그런데 사르트르와 같은 아량이나 관대함은 보이지 않는다. 정작 스스로가 번호표, 다시 말해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종길의 가을귀]'돈' 조일현은 돈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돈은 우리가 잊을 때 삶의 낙이 된다. 돈이 없다고 생각될 때처럼 돈의 존재가 절실한 때도 없다. "얼마입니까?"라는 물음에 "가격은 문제가 안 돼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 문제를 자기는 이미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적절한 만큼의 돈이란 평온함과 걱정 사이의 가느다란 경계선이다. 돈이 적절히 있을 때에는 돈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적절함은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자기 몸에 완전히 무심할 수는 없듯이, 돈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으로 세상 모든 이들은, 무엇보다 부자들은 돈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세계적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저서 '돈의 지혜'에 축적한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성찰을 담았다. 그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처한 딜레마를 이야기하면서 양적인 차이가 아니라 돈의 사용법에 있어서의 질적 차이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풍요는 우리의 가장 유치한 욕망, 돈을 펑펑 써서 모두를 뒤로 나자빠지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구체화한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모두가 안다. 부의 추구는 타인의 인정과 공감에 대한 추구라는 것을, 사랑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픈 욕망이라는 것을."


[이종길의 가을귀]'돈' 조일현은 돈의 주인일까? 노예일까?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돈의 지혜로움을 말하면서 세 가지 미덕과 세 가지 의무 사항을 제시한다. 미덕은 자유와 안정, 마음의 평화다. 이것이 정직과 균형, 나눔이라는 의무와 조화를 이뤄야만 비로소 돈의 지혜로움이 완성된다고 한다. 조일현은 애당초 그 가치를 알 수 없었다. 부정행위로 돈을 축적하기도 했으나,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하면서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경쟁체제에 신물을 느끼기 바빴다. 그와 비슷한 연령의 젊은이들은 돈을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돈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고 한다. 돈에 대한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고, (진심이든 아니든 간에) 돈을 인생의 중심에 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부자든, 가난뱅이든 돈을 바라보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얼마든지 돈의 노예가 될 수도 있고, 멋진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조일현은 번호표와 금융감독원을 피해 올라탄 지하철에서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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