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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쟤도 그랬는데" 대신 '큰 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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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잘못을 범하게 마련이다.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불법 혹은 위법까지 이르진 않았더라도 도덕이나 상식, 사회 상규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기 예사다. 그것이 얼마나 큰가, 의도적인가 실수인가, 어떤 해악을 미쳤는가 혹은 얼마나 자주 그랬는가에 따라 비난이나 처벌이 달라질 따름이다.


문제는 허물이 드러났을 때 이에 대처하는 자세다. 바람직하기는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고치거나 처벌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러기 쉽지 않다. 그 잘못이란 것이 명백히 불법으로 판정되지 않는 경우에 특히 그렇다. 이럴 때 동원되는 수법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다. 첫 번째는 부인이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는 부인이다. 두 번째는 무지다. 불법인 줄 몰랐다는 '모르쇠' 전법이다. 여기에 '떼쓰기'와 '물 타기'도 흔히 쓰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 중 떠들던 아이가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았다. 이때 자기가 떠든 게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떼쓰기이고 "쟤도 그랬대요"하면서 다른 학생까지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작전을 펴는 것이 '물 타기'이다.


문제는 이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법이 우리 정치판에서 판친다는 사실이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지난 25일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발언이 그렇다. 그는 "검찰은 과거에는 왜 권력기관을 동원한 노골적인 임기제 공무원의 축출이 '불법'이 아니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시절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당시엔 그냥 넘어갔다가 왜 이번 건만 문제 삼느냐는 항변이었다.


이건 전형적인 '물 타기'다. 전 정권도 그랬는데 왜 우리만 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분명히 전 정권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기관장들을 찍어냈을 것이다. 이를 단죄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부의 수상한 '찍어내기' 혐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쟤도 그랬잖아요"라고 해서 문제 학생이 떠든 사실이 없어지거나 덜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정권을 쥔 측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힘이 약한 야당 측에서 이런 수법을 더 즐겨 쓴다. 자유한국당 측의 '특검 공세'가 대표적이다. 한국당은 성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특검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측에 드루킹 재특검이며 손혜원ㆍ신재민ㆍ김태우 사건에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에 대한 특검 제안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이것 역시 뜯어보면 '물귀신' 작전이요, 물 타기 전법이다. 민주당의 '김학의 특검'은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의원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렇다 해도 한국당이 '무더기 특검'으로 반격하는 것은 궁색해 보인다. 특검에 특검으로 맞서는 것은 논점을 흐릴 뿐 아니라 자칫하면 '우리에게 겨가 묻었으면 너희는 ×이 묻은 것 아니냐'는 대응으로 비친다.


이런 '물 타기' 정쟁은 정치 혐오만 부추긴다. 국민 입장에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뒤늦게라도 처벌함으로써 후련하긴 하겠지만 실익이 없다. 이른바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바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이전투구보다는 여야가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심정으로 잘못은 잘못대로 인정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편이 보기에 더 좋다.


유치한 '물 타기' 정쟁 대신 누가 봐도 문제가 되는 장관후보자는 과감히 지명을 철회하거나 정치적 논란과는 별도로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법안 등 '민생법안' 처리에 협조하는 그런 '대타협의 정치'는 언제쯤 여의도에서 볼 수 있을까.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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