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신뢰 바닥, 퇴소하고 싶어도 갈 곳이…" 학부모 '진퇴양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무기한 개학 연기 투쟁을 시작한 4일 서울의 한 유치원 정문에 시정명령서가 붙어 있다. 정부는 개학을 무단 연기한 유치원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 조치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예비소집 때 아무 말 없었는데 토요일에 개학 연기한다고 문자만 왔더라고요. 명단에 없는 유치원도 많은데 하필 저희 유치원이라니, 다른 데로 보낼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개학을 해도 걱정이에요. 아이들을 볼모로 잡아 운영하는 유치원인데 개학한다고 달라질까요. 당장 입학 취소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당장 다른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꾹 참고 있네요."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3·1절 연휴 내내 불편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유치원 3법 철회 등을 두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와 정부 간 기싸움이 장기화되면서 결국 유치원 개학을 하루 앞둔 3일 한유총이 개학 연기를 강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국 365곳 사립유치원이 개학 연기 의사를 밝혔고, 개학 당일까지 개학 연기 여부를 밝히지 않은 유치원도 있어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한유총의 개학 연기 강행에 대해 정부가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강경 대응 방침을 내놓았음에도 한유총이 폐원도 불사하겠다고 맞서면서 양측의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피해를 입고 있는 건 당장 유치원 개학을 맞은 유치원생과 학부모. 돌봄 공백도 문제지만 학부모들은 이번 유치원 사태를 겪으면서 유치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에 거주 중인 한 유치원생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지난 2일 유치원 측에서 개학 연기 통보를 받았다. 자체 돌봄은 운영하겠다고는 밝혔으나 A씨는 유치원 퇴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정부 정책에 대응하겠다고 아이들을 인질로 삼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런 유치원에 더 이상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씨도 이번 유치원 사태에 대해 한유총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B씨는 "다행이 개학 하루 전 개학연기를 철회해 당장 돌봄에 공백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유치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건 사실"이라며 "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을 찬성하고 있는 만큼 이 유치원에 아이를 계속 보내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치원 입학을 앞둔 부모들도 불만이 크다. 내년 유치원 입학을 앞둔 또 다른 학부모 C씨는 개학 연기 명단에 있는 유치원들은 유치원 입학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입학 시기가 지나면 다른 원에 자리가 없어 옮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유치원들이 악용한 셈"이라며 "이런 원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명단에 오른 유치원들을 거를 예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학부모들이 이번 유치원 개학 연기 사태에 대해 한유총에 더 많은 비난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는 정부의 유치원 관련 정책을 지지하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2월 말 실시한 '유치원 3법'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은 유치원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은 83.1%에 달했다. '에듀파인 도입이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한유총 측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도 73.7%였다. 유치원 공공성 강화 대책에 대한 찬성 비율은 연령·성별·이념성향 등의 요인과 큰 관계가 없었고, 육아·보육의 주 계층인 여성과 30~40대에서 다른 성별·연령층에 견줘 찬성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여론의 바로미터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유총 퇴출을 요구하는 청원 글은 하루 만에 2000여 명 이상이 동의를 하는 등 한유총과 관련한 비난 글이 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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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유총 측은 정부가 협박과 겁박으로 일관하며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임의 폐원'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개원하지 않은 유치원 유아들을 위해 '긴급돌봄체계'를 가동해 돌봄 공백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유치원 운영이 정상화되지 않은 만큼 당분간 유치원생과 학부모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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