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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효한 80년 전 고전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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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걸판의 '분노의 포도', 원작 충실히 반영해 자본 논리의 비정함 보여줘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은 서른일곱 살이던 1939년 소설 '분노의 포도'를 출간했다. 주인공인 톰 조드의 가족은 오클라호마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었다. 가뭄이 들어 땅을 잃고 새 희망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진 것 없는 톰의 가족은 억압과 착취의 먹잇감일 뿐이었다.


극다 걸판은 2014년 연극 '분노의 포도'를 홍대 산울림 소극장에서 처음 공연했다. 산울림 소극장 개관 50주년 기념으로 3일까지 다시 공연한다. 걸판은 분노의 포도가 80년 전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을까라고 묻는다.

극은 톰이 교도소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뜻하지 않은 살인으로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4년 만에 가석방 된다. 교도소 간수들이 다시는 법을 어기지 말라며 인사를 건네지만 톰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게 되는 때가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톰. 고향 마을은 휑하다. 지주와 은행에 땅을 뺏기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났다. 톰의 가족들도 캘리포니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버티던 톰의 할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고향 땅에 묻힌다. 비로소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톰의 가족. 사막을 횡단하는 중 할머니도 숨을 거둔다.


드디어 도착한 캘리포니아. 톰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모두 열심히 일할 수 있다며 돈을 벌고 땅도 사 또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순진한 양반이라며 톰의 아버지를 조롱한다. 캘리포니아는 800개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3000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 톰의 가족은 갖은 억압과 착취를 겪는다.

연극 '분노의 포도'의 한 장면  [사진= 산울림 제공]

연극 '분노의 포도'의 한 장면 [사진= 산울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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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고, 어렵게 구한 일자리도 급여가 턱없이 낮다. 톰의 가족은 우연히 정부가 운영하는 천막촌에 정착해 희망을 찾는다. 일자리도 얻는다. 어린 동생들까지 모두 열심히 일해 하루종일 1달러를 번다. 하지만 천막촌 인근에 상점은 단 한 곳. 상권을 독점한 이 곳에서는 빵과 고기 가격을 두 배로 비싸게 판다. 상점 주인은 톰의 어머니에게 비싸면 시내에 있는 가게로 가라며 배짱을 부린다. 톰의 가족들은 모두 하루종일 열심히 일해도 겨우 한 끼 저녁 밖에 해결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농장주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국영 천막촌 사람들을 일꾼으로 쓰지 말자고 결의한다. 임금이 비싸다는 이유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고 톰은 또 다시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면서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스타인벡은 소설 출간 이듬해인 194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62년 노벨문학상도 받았다. 하지만 분노의 포도 출간 직후에는 미국 농민의 삶을 지나치게 참담하게 묘사했다는 이유 때문에 논란이 일었고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연극은 스타인벡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1940년 존 포드 감독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포드 감독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안긴 작품이다.


연극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려 노력했고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연극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을 수 있다. 극 중간중간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있다.


조드 가족이 사막을 횡단하던 중 주유소에서 물 한 모금 얻으려 하지만 주유소 사장은 기름을 사지 않는 손님에게는 물을 줄 수 없다며 거절한다. 아버지가 어렵게 구한 일자리는 오렌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오렌지를 따 그냥 내다버리는 일이었다. 땅을 잃으면서 권위가 떨어진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무리하게 일하라고 요구하면서 아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비정한 이야기지만 극은 무겁지 않다.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여러 자치가 있고 뮤지컬처럼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미국의 대표 민요 중 하나인 '홍하의 골짜기'는 때로는 축제의 노래, 희망의 노래로, 때로는 비탄함을 담은 노래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고물 트럭도 인상적이다. 여러 나무판을 조립해 트럭이 완성되는데 트럭이라기보다는 뗏목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극의 중간에 조립된 트럭이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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