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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마치니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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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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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네발트(Grunewald)는 독일 베를린의 남서쪽에 있는 숲이다. 넓이가 40㎢나 된다.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다. 옛날에는 사냥터였다고 한다. 요즘도 야생동물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숲 서쪽에 하펠 강이 흐른다. 강물 위에 흩어지는 오후 햇살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그루네발트탑(Grunewaldturm)을 찾으면 이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그루네발트탑은 1899년 6월9일에 공개되었다. 해발79m의 카를스베르크 언덕 위에 신고딕 양식으로 지은 탑이다. 높이 55m로 빌헬름 1세 황제(1797~1888)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그래서 처음 이름은 빌헬름 황제탑(Kaiser-Wilhelm-Turm)이었다. 빌헬름 황제는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이기고 1871년에 독일을 통일했다.

탑 안에 들어가면 홀 가운데에 황제의 대리석 조각상이 서 있다. 구리로 만든 부조 네 개가 황제를 바라본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헬무트 폰 몰트케, 알브레히트 론, 프리드리히 카를 황태자다. 독일 제국의 공신들이다. 특히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는 통일의 기수였다. 그의 명성 때문이었을까.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한 일본의 마라톤 팀은 그루네발트 탑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르는 비탈길을 ‘비스마르크 언덕’이라고 불렀다. 베를린 어디에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지명이다. 일본 대표로 나간 조선 청년 손기정은 이 언덕에서 경쟁자들을 모조리 따돌리고 금메달을 땄다.


한 나라가 기틀을 다져 안팎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는 통일이 필수다. 분열된 독일은 나폴레옹의 사냥감이었다. 그러나 통일은 그들을 세계사의 주인공에 되게 했다. 2차대전 이후 동서로 나뉜 형제가 다시 하나를 이룬 지금 독일은 유럽의 리더다. 통일 재상 비스마르크와 헬무트 콜의 이름은 청사에 빛날 것이다. 통일의 영웅은 독립의 영웅처럼 위대하다. 독립과 통일이 한 언어일 때도 있다. 언어의 정수는 시(詩)다. 독립운동가 만해(萬海) 스님은 1926년에 낸 시집 '님의 침묵'에 머리말(군말)을 쓰면서 왜 마치니의 이름을 올리셨는가.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주제페 마치니(Giuseppe Mazzini)는 주제페 가리발디ㆍ카밀로 카보우르와 함께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3걸(傑)이다. 제노바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되었으나 오스트리아의 압정에 신음하는 조국의 해방과 통일을 소망하여 생애를 바쳤다. 두 번이나 사형 선고를 받는 형극(荊棘)의 길이었다. 1849년 오늘은 마치니가 혁명군을 이끌고 로마 공화국을 선포한 날이다. 그가 가로되 "조국은 땅이 아니다. 땅은 그 토대에 불과하다. 조국은 이 토대 위에 건립한 이념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사상이며, 그 땅의 자식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다"라 하였다. 이 거룩한 언어가 싸구려 정치꾼의 입을 옮겨 다녀 애석하나 그 빛이 바랠 리는 없다.


다가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북미 정상이 두 번째로 만난다. 두 사람의 공안(公案)은 핵폭탄과 미사일이겠으나 우리에게는 굳게 지른 빗장 너머 통일의 길을 내다보는 일. 그 일이 오롯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어서 유감이다. 그러나 간난과 신고를 외면하고 어찌 미래를 꿈꾸랴. 비스마르크는 철과 피(Eisen und Blut)를 외쳤으나 우리에게 선택은 염원과 인내뿐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요 마치니의 님은 이탈리아이며 우리의 님은 오호라, 조국 곧 통일 대한민국인 것을.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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