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리먼사태 당시 일본 중앙은행은 뭘했나…10년전 회의록 보니

최종수정 2019.01.29 16:27 기사입력 2019.01.29 16:13

댓글쓰기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9월 16일 오후 2시.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회의실 내에는 답답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주가는 급락했고 금리는 치솟았다. 외환시장에서는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엔화 매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참석한 나카소 히로시 당시 금융시장담당 국장은 "지난 주 자료를 제공했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정책위원들에게 새로운 자료를 내밀었다. 이후 약 한달반동안 도쿄 증시에서 닛케이 평균지수는 40% 추락했다.


2008년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리먼 브라더스 사태 당시 BOJ의 회의록 내용이다. 총 자산 6390억달러 규모의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여파는 즉각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산됐다. 일본이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29일 BOJ가 공개한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는 리먼 사태 다음날 진행됐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당시 총재는 "금융시장, 자산, 실물경제의 부정적 시너지 효과가 언제 끝날 지 귀추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당시 표면적 주범은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하지만 위기의 근원은 단순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과 주택저당채권, 부채담보부증권으로 뒤섞여 꼬리에 꼬리를 문 파생상품의 연쇄붕괴가 금융시장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결과였기 때문이다. 니시무라 기요히코 당시 부총재는 이틀째인 17일 회의에서 "지금은 불확실성이 높다"고 말했다. BOJ는 만장일치로 금융통화정책의 현상 유지를 결정하며 회의를 마쳤다.


"죄송하다." 다음날인 18일 오후 BOJ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시라카와 총재는 고개를 숙였다. BOJ가 이틀간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친 다음 날에 다시 정책위원회를 소집하는 것은 역사상 최초였다. 나카소 총재는 "시장에 쇼크가 크다"며 "달러자금의 극단적인 움직임이 시장을 극단으로 몰고가고 있다"고 위기감을 호소했다. BOJ는 이날 긴급회의 개최 배경으로 시장의 자금조달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공조방안 공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약 19조엔 규모의 달러자금을 시장에 공급하는 이례적 조치를 결정했다.


같은 해 10월31일. BOJ의 회의는 오전 8시30분에 시작해 5시간30분가량 이어졌다. 달러·엔 환율은 1개월여만에 약 20엔 올랐고, 도쿄증시의 닛케이지수는 7000대까지 떨어지며 버블 붕괴 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이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금융완화라는 새로운 단계에 돌입했지만, BOJ는 동참하지 않았었다. 시라카와 총재는 "중앙은행의 본질은 유동성 공급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 유지"라고 강조해왔다.

당시 미국과 유럽, 영국의 정책금리는 2~5%대로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대응여지가 있었지만, BOJ의 상황은 달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안전자산으로의 도피를 부추겨 엔화 급등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 한 정책의원이 결국 금리인하 필요성에 대해 운을 뗐다. "0.2% 인하는 완화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에 휩쓸려버린다" 등 회의에 참석한 이들 간의 공방이 오갔다. 시라카와 총재는 회의를 종료해야만 하는 오후 2시가 돼서야 금리인하안을 정리했다. 표결 결과는 찬성 4명, 반대 4명. 7년7개월만의 금리인하는 의장의 결정으로 겨우 정해졌다.


12월19일. 시라카와 총재는 회의 시작에 앞서 "이번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전환점이 될 것이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리먼 사태가 금융시장을 뒤흔들며 경제 여파도 커진 시점이었다. 야마구치 부총재는 "금융, 실물경제 간 부정기적 나선형으로 생산, 수입, 지출의 하락세가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어려운 경기상황을 언급했다. 일본의 7~9월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12월 전국 기업 단기경제관측조사에서 대기업 제조업의 업황판단도 급락했다.


Fed는 BOJ 회의에 앞서 금리인하와 동시에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다. 달러-엔환율은 1달러당 87엔까지 엔고가 진행됐고,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 우려도 확산됐다. 한 정책위원은 "깊은 경기침체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금리인하, 기업채권 매입 등의 방안이 회의에서 제안됐다. 또 다른 의원도 금리인하에 대해 "환율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동조했다. 시라카와 총재는 "중앙은행으로서 최대한 기여하겠다"며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BOJ의 정책금리는 0.1%로 떨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08년 당시 금융정책이 일본 경제의 전환점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10년이 지났지만 리먼 사태의 상태는 여전히 깊고 BOJ는 제로금리"라며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며 더욱 멀어졌다"고 전했다.


BOJ는 이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동결하고 국채 10년물 금리도 0%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