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데 안드라데(Antonio de Andrade)는 1580년 포르투갈의 올레이로스에서 태어난 천주교 신부다. 1596년 예수회에 들어갔고 1600년부터 세상을 떠나는 1634년까지 인도에서 선교했다. 그는 1624년 동료 선교사 마누엘 마르케스(Manuel Marques)와 함께 힌두교도 순례자들 틈에 끼어 마나 고개(5600m)를 넘는다. 그래서 히말라야를 처음으로 넘은 유럽인이 되었다.
히말라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다. 해발 7300m를 넘는 봉우리 30여개를 만년설이 덮고 있다. 산맥은 서쪽의 낭가파르바트(8126m)로부터 동쪽의 남차바르와(7755m) 산까지 이어져 그 길이가 2500㎞, 남북에 걸친 폭은 200~400㎞에 이른다. 산스크리트어로 'hima'는 눈(雪)이요, 'alaya'는 보금자리 또는 집이라는 뜻이다.
에베레스트(8848m)는 히말라야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8848m는 인도 탐사대가 1953년부터 1956년 사이 측정한 높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알파인클럽에서는 8850m, 이탈리아는 8846m를 주장하고 있고, 중국은 2005년 탐사를 거쳐 8844m라고 발표했다.
히말라야 최고봉의 이름이 에베레스트가 된 시기는 1865년이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총독부 측량국장으로 일한 앤드루 워(Andrew Scott Waugh)가 전임자인 조지 에버리스트(George Everest)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국 왕립지리학회에 건의했다. 그때까지 봉우리는 '피크-15'로 불렸다. 봉우리에 사람 이름을 붙이지 않는 당시 관행과는 맞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1907년에 알파인 클럽(영국 산악회)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에베레스트 등정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네팔이 통상수교를 거부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실현하지 못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1년에야 첫 원정대를 보냈다. 1938년까지 일곱 차례나 티베트 쪽에서 등정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1952년에는 스위스 등반대가 네팔을 경유하는 루트를 공격했으나 역시 실패로 끝났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산악인은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다. 1919년 7월 20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2008년 오늘 숨을 거둔 힐러리는 1953년 영국원정대 소속으로 히말라야에 도전했다. 그해 5월 29일,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남동능선을 파고들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오른다. 날씨가 아주 좋았고, 산소공급기의 도움도 받았다.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은 산악인의 꿈이 되었다.
1975년 일본의 다베이 준코는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1978년 이탈리아 산악의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와 오스트리아의 페터 하벨러는 처음으로 산소공급을 받지 않고 등정에 성공했다. 메스너는 2년 뒤 단독등정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산악연맹원정대의 고상돈(작고)이 1977년 9월 15일 펨바 노르부와 함께 정상에 올랐다. 한국 산악 역사상 첫 8000m급 등정 기록이기도 했다.
히말라야는 영혼이 깃든 곳이라고 한다. 인간의 끝없는 등정은 희생을 담보로 했다. 수없는 산악인의 영혼이 설산 아래 스러졌다. 등반 도중에 사망한 우리 산악인도 90명이 넘는다. 1971년 5월 김기섭이 마나슬루에서 산화했다. 201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에 오른 박영석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됐다. 대한민국 여성으로는 처음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도 1999년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 뒤 하산길에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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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도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정오 무렵에 정상에 올라 15분쯤 머무른 뒤 하산하면서 기쁨과 안도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더 이상 스텝(빙하ㆍ눈골짜기 등의 급사면을 오르내리기 위해 파 놓은 계단)을 만들 필요도 없고, 횡단할 산등성이도 없으며, 등정의 일념에 불타는 우리를 애태우는 바위나 얼음의 융기도 없다." 1990년 한국의 복진영ㆍ김재수ㆍ박창우는 힐러리가 이용한 루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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