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에 지어진 집. 처음엔 파리 사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교황청 대사관, 수도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유명 예술가들에게 임대를 주기도 했죠. 로댕도 여기 살았습니다. 나중에 이 집을 사들인 정부가 철거하려 하자 로댕은 자신의 작품을 이 집에서 전시하는 조건으로 기증하게 됩니다. 로댕 박물관 탄생의 사연입니다.
실내 전시장을 돌다가 지친 이들은 정원으로 나와 산책할 수 있습니다. 한나절 있을 요량으로 입장하면 간단한 요깃거리도 챙겨가는 게 좋습니다. 벤치가 많이 있어서 자유롭게 앉아 먹고 마시며 쉴 수 있습니다. 로댕의 작품 앞에 서면 인간은 무엇인가를 줄기차게 물어오는 작가의 질문에 숨이 턱턱 막히니까요. 뜨거운 눈과 더운 가슴을 종종 식혀야 합니다. 하지만 저택의 제일 앞과 뒤쪽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 가슴 식히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금세 눈치 채게 됩니다. 로댕이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조각가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재현하는 예술가라는 걸 발견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정원 끝에 물 마른 동그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 특이한 조각이 있습니다. <우골리노>.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러시아에서 온 소녀들은 터지는 꽃봉오리처럼 연신 깔깔거립니다. 깔깔깔깔…, 깔깔깔깔….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의 신들이 지상의 가엾은 인간을 바라보며 웃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저택 입구, <우골리노>의 반대편에 또 다른 지옥이 있습니다. <칼레의 시민>입니다. 14세기 영국의 왕 에드워드3세는 프랑스의 칼레를 함락하기 직전 모종의 제안을 하지요. ‘도시의 명망가 여섯 명이 목에 밧줄을 걸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성의 열쇠를 내준 후 그 밧줄로 처형을 당하면 모든 시민을 살려주겠다.’ 정복자는 칼레 사람들의 마음에 지옥을 만들어 심습니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그때 최고의 부자 생 피에르가 나서죠. 신부, 변호사가 뒤따라서 마침내 여섯 명의 ‘거룩한 희생양’이 승리한 정복자 앞에 나섭니다. 상황은 얄궂습니다. ‘저들을 살려주세요.’ 임신한 영국의 왕비가 간청을 하자 왕은 여섯 명 전부를 풀어주었다는군요.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후대에 의해 윤색된 허구라고 합니다. 누군가 이야기에 재미를 불어넣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려 가공했다는 거죠. 바다의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하듯이, 이 스토리 속에서는 희생정신이 태어납니다. 과연, 500년쯤 지난 뒤에 칼레 시장은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작품을 당대 최고의 조각가에게 부탁하는군요. 로댕은 희생정신보다 더 고결한 철학을 작품 속에 새겨 넣지요.
그가 재현한 여섯 명의 시민은 죽음 앞에서 갈등을 드러내는 고뇌에 찬 인간들입니다. 멸사봉공의 영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죠. 로댕은 조작된 이데올로기 보다는 인간의 진실을 알리는 쪽을 택합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나오는 숭고함. 그때가 바로 신이 깃드는 진정한 순간! 이를 알아차리는 건 감상자의 몫입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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