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10년] 한국판 골드만삭스 꿈꿨지만…규제·은행중심 갈길 멀어
IMF 겪으며 국내시장 취약성 깨달아
英 마거릿 대처의 '금융빅뱅'이 모델
6개 금융 관련법 2009년 2월부터 시행
2017년 5개 증권사 초대형IB로 지정
시장 불안에 투자자 보호장치 강화
취지 어긋나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2009년 2월 자본산업의 대형화와 겸업화를 통해 선진 투자은행(IB)을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출현시키겠다는 목적 아래 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됐다. 이로 인해 은행, 보험, 증권회사들의 업종 내 경쟁이 아니라 금융권 전체의 대전이 벌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이른바 한국 금융산업 '빅뱅'의 시작이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초대형 IB 육성 디딤돌= 자본시장통합법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당시 정부는 한국판 골드만삭스 등과 같은 대형 IB 설립을 유도하겠다는 정책 의도로 통합금융법 구상 계획을 발표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겪으며 론스타ㆍ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IB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와 손쉽게 이익을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깨달은 영향이 컸다. 당시 통합금융법 구상 계획은 1986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단행한 '금융 빅뱅'이 그 모델이었다. 은행과 증권회사 간 장벽 철폐, 외국 금융회사의 자유로운 시장 참여 등이 골자였다. 2007년 7월 국회는 은행법ㆍ자산운용법ㆍ신탁업법 등 6개 금융 관련법을 통합한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을 의결했고 이후 1년 6개월여가 지난 2009년 2월 시행되면서 금융투자업(매매ㆍ중개ㆍ자산운용ㆍ투자자문ㆍ투자일임ㆍ자산보관관리) 간 겸영을 허용했다.
이후 자본시장통합법은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보완을 거쳐 왔다. 정부는 2011년 자기자본 규모 대형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기로 했다.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디딤돌이었던 셈이다. 2013년에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을 갖춘 증권사(당시 삼성증권ㆍ현대증권ㆍ대우증권ㆍ우리투자증권ㆍ한국투자증권)가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이들에게는 기업 신용공여와 프라임브로커서비스(PBS: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대출, 증권 대여, 자문, 리서치 등 관련 종합 서비스)를 신사업으로 허용했다.
2015년 기업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확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후 2016년 8월 금융위원회는 자기자본 규모 4조원 이상을 기준으로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5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ㆍ한국투자증권ㆍNH투자증권ㆍ삼성증권ㆍKB증권)는 중소 증권사 인수 등을 통해 공격적으로 자기자본을 확충하며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맞췄다. 2017년 7월 금융위에 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결과 이들 5개사는 '초대형 IB'로 지정됐다.
◆무늬만 포괄주의…'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에 '빅뱅'은 쉽게 오지 않았다.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 한 시기였다. 2008년 하반기 미국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파만파 확대됐다. 2008년 한때 1000선이 붕괴됐던 국내 코스피는 2009년에도 1157.4로 시작했다. 전 세계 실물경제 충격파가 1년 내내 이어지며 국내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리면서 안정성이 중시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는 '규제 완화'라는 단어를 감히 입밖으로 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위험한 순간에 규제마저 없다면 금융시장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우려가 컸다. 꽁꽁 얼어붙은 금융시장에서 자본시장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구두지도, 자율규정 등으로 보이지 않는 규제를 양산했고 '불완전 판매' 차단을 위해 투자자 보호장치를 겹겹이 쳐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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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본시장법은 무늬만 '포괄주의'일 뿐 실상은 구체적인 자율규제를 적용해 '열거주의'나 다름없게 됐다. 포괄주의란 모든 사항을 자유화하고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사항을 나열하는 반면 열거주의는 모든 것을 금지하는 가운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항을 나열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자본시장법과 하위 시행령, 시행규칙, 행정규칙에 따른 규제 수는 600개가 넘었다. 금융업 중에서도 가장 모험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할 자본시장을 가로막는 규제가 은행(243개), 보험업(375개)보다 2배가량 많았다. 이로 인해 자본시장이 증권사가 아닌 은행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법안 취지와 달리 자본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는 논란이 거셌다. 심지어 은행권 중심으로 재편된 자본시장 구조가 '박스피(코스피지수가 일정 폭 안에서만 오르내리는 현상)'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지적조차 제기됐다.
2017년 국회에서 열린 '금융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황영기 당시 금융투자협회장은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찾아온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지속적인 후속 규제가 덧대기 식으로 과도하게 생산됐다"며 "예외의 예외를 낳는 후속 규제들의 속출로 자본시장의 역동성은 떨어지고 시장 참여자들의 규제에 대한 내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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