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반의 '위·변조 불가능한 공동 장부'
중고차 시장서 사고이력 숨기는 것도 불가능
개방·공유된 정보로 신뢰비용 확보…투자로 선순환


번영의 조건인 '신뢰'…블록체인의 신뢰기능에 기대감
英이코노미스트 "블록체인은 신뢰머신(Trust machine)"


[Why블록체인]'뒤통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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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중고차 시장같다. 쉽사리 믿을 수가 없다.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쓰거나, 뒤통수를 맞을 것만 같다. 비단 중고차시장만이 아니다. 어렵사리 부동산 계약을 하고나니, 일주일만에 창틀에 곰팡이가 핀다. 적당한 값에 휴대폰을 사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나는 '호갱'이 됐다.

최근 비트코인 광풍 속에 반드시 뒤따르는 용어가 있다. '블록체인(Blockchain)'이다.


비트코인이 가상통화로서 기능할 수 있는 건 블록체인 기술 덕이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내에서 공동으로 거래정보를 검증하고 기록·보관함으로써 공인된 제3자 없이도 신뢰성을 확보하게 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일종의 '공동 장부'다. 거래내역이 변동되면 그 내용이 거래참여자 전원에게 공개되고 장부에도 반영된다. 다수의 동의 없이는 거래내역을 변경할 수 없어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화폐의 작동원리인 '신뢰'가 생긴다.


중고차 시장은 경제학에서 흔히 '레몬 마켓(lemon market)'이라 일컬어진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우량품은 자취를 감추고 불량품만 남아도는 시장을 말한다. 레몬이 겉은 맛있어보이지만, 너무 셔서 바로 먹지는 못하고 식재료로 활용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이와 반대로, 괜찮은 품질의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을 '피치마켓(peach market)'이라고 한다.


블록체인은 레몬마켓을 피치마켓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제조사가 자동차를 만드는 순간, 블록체인 장부를 만든다고 하자. 차량이 출고되면, 정부·제조사·보험사·카센터·구매자 등이 '공동장부'를 분산해 갖게 된다. 만약 차에 변동사항이 생기면 해당사항이 즉시 반영된다.


예컨대 차량의 최초 구매자가 침수피해로 인해 카센터에서 수리를 받았다하자. 이 구매자는 침수이력을 숨기고, 이 차를 중고차 시장에 내다팔고 싶을 수 있다. 블록체인 장부가 없는 상황이라면, 보험청구만 안하면 수리기록이 남지 않기에 그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장부인 이상 그런 행위는 불가능하다. 정비회사가 블록체인 장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비회사가 차량의 장부에 수리이력을 기록하는 순간 정부·제조사·보험사 모두가 공통된 장부를 갖는다. 구매자가 이 사실을 삭제하려고 하면, 5명의 공동장부 보유자 중 3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그러니 애초에 속일 수가 없고, 속일 생각도 안하게 된다.


이처럼 블록체인 장부가 중고차 시장에 도입되면, 뒤통수를 맞을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발품 팔지 않아도 되고, 정보를 구하러 다닐 필요도 없다. 블록체인이 적용된 믿음직한 공동장부만 보면 된다.


블록체인이 중고차 시장을 바꾸듯, 한 사회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것은 그래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을 '신뢰 머신(The trust machine)'이라고 표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을 '신뢰 머신'이라고 표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블록체인을 '신뢰 머신'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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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적인 '저신뢰 사회'다. 행정부·사법부·입법부를 가리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정부를 믿는다'고 응답한 국민은 34%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41개국 가운데 중하위권인 26위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펴낸 '국제경쟁력지수 2017~2018'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인 신뢰' 부문에서는 137개국 중 한국은 90위를 기록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최근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뉴스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3%를 기록했다. 1위 핀란드(62%)에 비해 39% 낮았다.


권력이나 기관에 대한 신뢰도만이 아니다. 한국인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35개국 중 23위(2014년 기준)에 머물렀다.


이만하면 나라 전체가 아예 중고차 시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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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번영의 조건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1995년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적 특성, 즉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썼다.


사장이 직원들을 믿을 수 없다면, 사장은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한다. 믿을 수 있다면 충분히 아낄 수 있는 비용이었다. 신뢰는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감소시킨다. 이는 투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경제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 비트코인 광풍이 온나라를 휩쓸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블록체인이라는 혁명의 씨앗이 움텄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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