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南國)의 노을은 유난히 붉다. 나는 백화점에서 나와 재래시장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은 곧고 길었다. 양옆으로 크고 작은 가게들이 어깨를 겯고 있었다. 골목의 끝은 광장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홍염과도 같은 열대의 노을이 이글거렸다.
골목을 막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나는 익숙지 않은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웍(wok)에서 불길이 번졌다가 잦아들고, 그 불길 속에서 검은 무엇인가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곤두박질쳤다. 나는 경악했다. 그 검은 무엇은 영락없는 사람의 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손이, 손들이 기름에 젖어 불길에 익어가고 있었다. 웍을 들썩일 때마다 손들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우수수 쏟아졌다. 검은 손의 실루엣이 불길과 노을을 배경 삼아 헛춤을 추었다. 나는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그게 뭡니까?" 주인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원숭이요."
나는 적도 근처에 있는 그 나라의 음식 문화에 대해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 원숭이를 먹는 곳은 많다. 중국에서는 원숭이의 골을 먹는다고 한다. 나는 먹어보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다만 나는 궁금했다. 어느 것이 원숭이의 손인가. 어느 것이 발인가. 모두 발인가.
인간의 먼 조상이 나무 위에 살았다면 발도 원숭이와 다름없었으리. 원숭이는 발을 손처럼 사용한다. 나뭇가지를 잡고 물건도 쥔다. 인간의 먼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올 때 발 모양은 어땠을까? 나무 아래에서는 달려야 했으리라. 하지만 원숭이 발로는 오래 못 달린다. 원숭이는 달릴 때 손발(네 발?)을 다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3600만 년 전에 인간의 조상(simian)이 아프리카에 나타나고, l500백만 년 전에는 인간이 유인원으로부터 이탈해 나와 하나의 계통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한다(서광조). 진화론이 틀림없는 과학이라면 손과 다름없는 원숭이의 발이 지금 우리의 발로 둔갑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은 놀라운 도약의 순간,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기적의 순간이다.
'손이 발이 되게 빈다'는 말이 있다. 사전에 이르기를 '허물이나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간절히 비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 속담이라고 한다. 아아, 무서운 말! 어떻게 하면 손이 발이 되는가. 2100만년의 비나리가 그곳에 있지 아니한가. 웅녀(熊女)의 신화는 혹 이토록 지난한 인류사를 설명하는 메타포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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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인간의 발에는 거룩함이 깃들인다. 그 거룩함을 예수가 몸소 보이니, 세족식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때 열두 제자의 발을 씻어준 데서 유래한 가톨릭의 전통. 부활절 사흘 전인 성 목요일에 진행되는 이 의식은 낮은 사람들을 섬긴 예수를 기리는 뜻을 담는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한 헌신, 가장 낮은 자들의 헌신! 그러기에 우리 몸뚱이 가장 낮은 곳에 거하며 인간과 대지를 잇는 정신의 이음새를 발이 감당하는 것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2017년의 마지막 태양을 바라보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몸이 곧 발임을 절감한다. 조물주가 원숭이의 발을 둔갑시켜 인간의 발을 완성했다면 우리 마땅히 그 뜻을 헤아릴진저.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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