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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시집이나 가라는 수모가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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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조종사 15인으로 뽑혔지만 행정 계통 재배치
김활란 박사로부터 여성운동 참여 권유 받아
"각 사회분야 여성 진출 더 활발해져야"


▲김경오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

▲김경오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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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여자가 시집이나 가지 무슨 비행기 조종이냐며 받았던 수모가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건국 이후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여성 1호 공군 조종사 김경오(83) 대한민국항공회 명예총재는 1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김 총재는 2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관하는 제52회 전국여성대회에서 '김활란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다.

1949년 2월15일 김 총재는 김포비행장에서 공군에 입대했다. 당시 일본에서 독립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독립을 알리기 위해 여성조종사 양성 계획을 세웠다. 수천명의 후보자 중 뽑힌 15명의 후보생 중 하나가 김 총재였다. 그러나 군사 훈련을 다 받고도 조종 훈련을 받을 수 없었다. 기상 상황 보고나 정비 등이 그의 임무였다. 김 총재는 "갑자기 6·25전쟁이 일어나니까 모든 게 아수라장이 됐다"며 "당시 비행기가 우리나라에 5대 밖에 없었는데 우리 15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종 업무에서 배제된 채 행정 계통으로 재배치가 됐다"고 말했다.

전쟁을 겪으면서도 김 총재는 공군 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 전쟁으로 대부분 흩어지고 뽑힌 15명 중 2명만 장교가 됐는데 최종적으로는 김 총재만 남게 됐다. 김 총재는 "여자 2명 때문에 화장실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남자들 사이에서 사고가 날까봐 우리를 상당히 귀찮아하면서 둘 다 그만 두라고 했다"면서 "그러면서도 비행 조종을 한 번도 해보지 못 하면 억울할 것 같아 그만두질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기가 너무 타고 싶었지만 티를 내면 건방지다 할까 내색도 못한 채 가슴앓이를 했다.
전쟁 막바지에 들어 드디어 김 총재에게도 기회가 왔다. 이 대통령이 단독 비행 조종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1952년 5월12일 김 총재는 단독 비행에 성공한다. 김 총재는 "군인은 철저히 계급사회인데 같은 장교임에도 시집이나 가지하면서 비웃고 공군에 들어와서 뭐하냐는 수모를 입대 때부터 4년 간 당해왔지만 그럴수록 내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첫 비행 전 손톱, 발톱, 머리카락 등과 함께 유서를 부모님께 전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 총재는 유서에 "여자이기 때문에 푸대접을 당하고 뭘 못 하게 한다는 불평불만을 잔뜩 썼다"고 회상했다.

전역 후 후학 양성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 가 민간 항공기술 등을 공부하고 1963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후 김 총재는 우연한 계기로 여성운동계에 입문하게 된다. 김활란 박사가 김 총재를 불러 "혼자서 아무리 떠들어도 강산이 울리느냐. 우리가 목소리를 함께 해야 강산이 울린다"며 여성운동 참여를 권유한 것이다. 당시 김 총재는 여성항공협회도 만들고 고등학생들에게 항공 교육을 실시하는 등 후학 양성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여성단체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김 총재는 1988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여성단체협의회 10·11대 회장을 역임한다. 그는 "어느 여성 전화 교환수가 40살이 넘자 회사에서 해고당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나서서 복직시키고 교환수가 국장까지 올라 수 있도록 했다"며 "여성 은행지점장도 우리가 만들어내고 가족법 개정안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단체협의회는 대선 주자들에게 여성 관련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김 총재가 "사관학교에서 왜 여성은 뽑지 않느냐"며 문제를 제기했고 1997년 공군사관학교가 제일 먼저 여성을 뽑게 된다.

김 총재는 "정치 분야에서 요즘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 같은데 보다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일하게 진출하고 그 이상의 행보를 했으면 좋겠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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