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사진=아시아경제DB)

유재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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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대한민국 대중음악은 이 사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다. 3개월의 가수 생활, 한 장의 앨범으로 칭송받는 비운의 뮤지션 ‘유재하’를 두고 한 말이다.


30년 전 오늘(11월1일) 유재하는 하늘로 떠났다. 1987년 9곡이 수록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한 장을 남기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스물다섯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재하는 어릴 때부터 음악성이 남달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클래식과 악기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아코디언부터 피아노, 첼로 등 다양한 악기에서 소질을 보였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한 기타는 남다른 천재성을 보였다. 이때부터 작곡가의 꿈을 키웠고 음대에 진학했다. 한양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던 그는 1984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앨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가수로 데뷔하기 전 다른 음악가들에게 자신의 곡을 헌정했다. 제일 먼저 유재하의 곡을 부른 이는 조용필이다. 조용필 7집 앨범 수록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의 곡이다. 당시 ‘여행을 떠나요’ 등 히트곡에 가려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문세와 김현식도 각각 유재하가 작곡한 ‘그대와 영원히’, ‘가리워진 길’을 발표했다.

곡에 대한 욕심이 컸던 유재하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직접 부르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1987년 8월, 드디어 ‘사랑하기 때문에’란 앨범을 들고 데뷔했다. 기교 없고 어딘가 어눌한 창법과 클래식컬한 음악 스타일 때문에 유재하의 음악을 알아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당시 방송가에서는 가창력과 대중성을 중시했고 유재하는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단 한 번의 방송 출연 이후 방송 심의에서 번번이 반려됐다. 몇몇 음악 관계자들은 ‘음악이 이상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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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재들은 죽고 나서야 인정받는다고 했던가. 유재하도 세상과 등지고 나서야 곡들이 재조명 받으며 천재뮤지션으로 인정받았다. 타이틀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비롯한 ‘그대 내 품에’, ‘가리워진 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등 그가 남긴 9곡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팬들과 뮤지션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누군가는 ‘한국 대중음악은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신승훈, 김동률, 김광진 등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된 이들은 유재하가 ‘음악적 멘토‘였다고 밝혔다. 1989년부터 개최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도 조규찬, 유희열, 김연우, 방시혁 등 300명이 넘는 뮤지션을 배출하며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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