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70~80명 청소년 방문
"청소년들이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동아줄 되길"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부모님, 학교 선생님께 말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어요."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신정네거리 청소년 이동쉼터 '작은별'에서 만난 대학생 한혜원(20·여)씨의 말이다. 한씨는 지난해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동 쉼터를 처음 찾았다. 특별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조된 버스가 길가에 서 있는 점이 특이해서 처음 방문했다. 이후 한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이 생길 때마다 쉼터를 찾아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욕을 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손님들에 대한 대처법도 이곳 쉼터에서 운영하는 노동인권상담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이날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이동쉼터 작은별에는 5~6명의 청소년들이 보드게임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표정은 밝았다.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고 버스 안에서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이 늦게 들어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초등학생들도 1~2명 머물다 갔다. 밤 9시가 넘는 시간에도 청소년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하루 평균 청소년 70~80명이 이곳을 찾는다.
이동 쉼터는 요일마다 지역을 옮겨 다닌다. 전국 청소년 쉼터는 123개로 체류 기간에 따라 일시(30곳), 단기(53곳), 중장기(40곳)로 나뉜다. 이 중 25·45인승 버스 내부를 개조한 이동형은 일시형으로 서울 4곳, 부산·대구·대전 등 6곳에 위치해있다.
이곳을 찾은 청소년들에겐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근처 중학교에 다니는 장아영(16)양은 "작년에 친구 9명이 함께 다니다가 4명, 5명씩 편이 갈려서 싸우게 됐다"며 "친구들이랑 싸워서 속상하던 마음을 이곳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얘기하면서 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양과 편이 갈려 싸웠던 권지민(16)양은 쉼터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양과 다시 화해를 했다. 권양은 "고등학교 진로 문제도 상담을 한다"며 "아르바이트나 사소한 문제도 상담을 할 수 있고 여긴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동 쉼터는 9~24세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가출 청소년, 문제 있는 청소년들이 가는 곳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오히려 위기 청소년들의 발걸음이 끊어진다. 위기 청소년들은 처음부터 규격화 된 쉼터를 찾아가기 보다는 일시형 쉼터를 종종 찾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열리면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최근 가출 후 공장에서 일을 하다 함께 일하던 남성들에게 성폭행 당했던 김모(19)양이 이곳 쉼터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25인승 버스를 개조한 청소년 쉼터(더 작은별)는 골목길을 더 잘 다니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주택가에 있다 보니 민원도 자주 들어온다. 버스 내부 전기 발전기 소리가 크다거나 불빛이 지나치게 밝다며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다.
화곡역 근처 볏골공원에 위치한 이동형 쉼터 '더작은별'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김후정씨(24·여)는 "일부 어른들은 쉼터가 공부 안 하고 놀러 오는 공간으로 여긴다"면서 "이곳은 아이들이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일반 청소년이라고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털어 놓기 힘든 고민을 얘기하면서 우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쉼터가 청소년들이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동아줄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남 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 소장(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회장)은 "청소년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데 저출산 대책에 신경 쓰면서 정작 나와 있는 아이들에겐 무책임한 사회"라며 "단기 가출 청소년과 노숙형 청소년들을 구분해 쉼터를 지원하는 방안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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