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은 그가 숨쉬는 시대의 사람과 풍경의 깊이를 해학과 유머 넘치는 명문장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삶의 진실과 소설적 상상력'이라는 글에서 "최일남의 문학은 젊음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젊음이란 작가의식의 치열성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문단의 원로를 자처하지도 않으며, 붓을 내던진 채 작가 행세를 하지도 않는다"고 썼다.
'국화 밑에서'를 쓴 노령의 소설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일남은 '작가의 말'에서 "내놓고 실토하기 무엇하지만 요즈음의 노년소설은 형식이 예전보다 많이 다른 듯하다. 객관적 서사(敍事)와 상상력의 단순한 비교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같이 문단 데뷔 초장을 납[鉛] 냄새, 즉 신문사에서 보낸 사람은 더구나 처신이 힘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새 소설집에서는 인생의 석양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에 담기는 풍진세상의 희로애락이 덤덤하게 펼쳐진다. 하루에 두 군데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된 주인공이 상주와 대화를 주고받는 표제작 '국화 밑에서'는 장례를 둘러싼 풍속을 평하고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 이야기다. 소설가에게 세월에 따른 장례 풍속의 변화를 체감하는 일은 곧 자신을 둘러싼 실존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책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최일남은 '작가의 말'에서 "이번에 더 좀 유념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어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의 한 사람으로 비망록(備忘錄)을 적듯이 썼다"고 털어놓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은 유년의 기억이 일본어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를 인정하여 그 시절 일본어에 대한 기억을 '비망록을 적듯이' 써낸 한편, 모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는 또한 글쓰기의 본질을 향해 나아간다.
"언문일치가 나쁘지는 않되 글 각각 말 각각의 내력은 어쩔 수 없다네. 터진 입으로 마구 주워섬긴 언어의 파편을 무수한 붓방아질 끝에 다소곳이 내미는 글과 어떻게 비교해. 게다가 이 사람아. 넓은 의미에서 비유는 글쓰기의 알파요 오메가라구. 잘빠진 비유 하나 열 문장 부럽지 않은 이치가 여기 있다네." ('메마른 입술 같은' 54쪽)
최일남의 새 소설집은 이렇듯 인문의 향기로 가득하다. 그러기에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최일남 선생의 문학에서 소설의 지혜와 인간의 기품은 하나"라고 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또한 "'국화 밑에서'에 이르러 이 시대의 한국 소설은 노년의 실존과 내면에 대한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경지와 단단한 묘사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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