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박수의 진화/김미령
그가 박수를 치자 내 생각이 급선회했다 내 생각은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박수 소리가 근사한지 그는 다시 박수를 쳤다 박수가 박수를 모방하고 박수가 박수를 격려했다 그는 틈을 두고 치다가 삼삼칠로도 쳤다 그의 손바닥에서 나는 짓이겨졌다 박수를 치다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나는 바닥에 툭 떨어졌다 리듬에 맞춰 생각할 수도 있겠지 손바닥에서 침 튀기듯 멀리 날아갈 수도 있겠지 나는 그의 박수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박수의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손들이 박수를 호위하며 소리의 둘레를 북돋운다 발화가 시작되려는 지점에서 나는 기다린다 어떤 도약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의 박수는 실패할 수도 있다 박수에 의해 박수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손가락을 최대한 모으고 함성을 더해 무엇이 무엇을 토끼몰이하다가 나동그라지는지 보기로 한다 박수의 뒤에서 박수를 기다리며 볼륨을 조절하며 신중하게 또는 발랄하게 나는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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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망가지게 그냥 둘 순 없어"…'파업 대비' ...
■우리는 귀빈을 환영하거나 누군가의 어떤 일을 축하할 때 혹은 훌륭한 연설을 듣거나 멋진 공연을 본 뒤에 흔히 박수를 치곤 한다. 박수는 그러니까 환영, 축하, 동의, 감격의 표시인 셈이다. 그런데 박수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강요된 박수는 단지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폭력이다. 그래서 강요된 박수는 금방 표시가 난다. 이에 비해 우리가 숙고해야 할 경우는 그 박수가 강요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즉 비자발적인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 애매할 때다. 이 시에 적힌 박수가 그렇다. 시인은 분명 박수에 대해 불편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 또한 "신중하게 또는 발랄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 박수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동조의 표현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참기 어려운 권력의 행사와 그에 대한 복종일 것이다. 다시 말하는 셈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사태는 우리 모두 박수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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