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문 거부한 '간토 조선인학살'의 진실

간토대학살 추정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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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이케 지사는 대중에 인기가 높고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 인사다.


24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고이케 지사는 내달 1일 열리는 간토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추도 행사에 추도문을 보내달라는 주최 측 요구를 거절했다. 지난해는 추도문을 보냈지만 올해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도쿄신문은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적힌 희생자 수가 6000여명이라는 문구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당시 조선인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한 정당방위였으며 피해자 수도 부풀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이케 지사의 추도문 거부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간토 대지진은 1923년 9월의 일이다. 매그니튜드 7.9, 최대 진도 7의 대지진으로 일본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지진은 대규모 화재와 해일(쓰나미)을 가져왔고 죽거나 실종된 이들이 40만 명에 달했다. 경제 불황에 대지진까지 겹치자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려고 했고 이를 위해 재일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했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로 향하는 분노의 민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들을 증오의 표적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의 선동에 일본인들은 전국에서 3689개의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을 살해했다. 이들이 살해한 조선인 숫자는 6000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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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직접 학살에 나선 이들은 죽창 등을 든 자경단과 여기에 가담한 군경이었다. 평범한 일본인이 아무렇지 않게 조선인 집단학살에 동참한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지휘 아래 진행됐다. 당시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 내각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 '반란을 일으켜 군인들과 싸우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뒤 약탈을 일삼고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내무성이 경찰에 보낸 문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어 이를 사람들이 사실로 믿도록 공작대를 조직해 조선인들이 벌인 것으로 보이는 테러 활동을 조작했다. 또 자경단이 만들어지자 조선인 학살에 나서도록 부추겼고 혼란의 와중에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노동운동가 히라사자와 게이시치(平澤計七), 사회주의지도자 오스기 사카에(大杉榮)부부 등 일본의 진보적 인사 수십 명을 검거해 살해했다. 하지만 학살이 알려진 뒤에도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사진=EPA연합뉴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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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와 관련해 고이케 지사가 '극우본색'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망언도 했으며 2007년에는 미국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미국에 가 공개 로비를 하기도 했다. 이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공개적으로 고이케를 지지하고 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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