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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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말 덥다. 하는 일 없이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에어컨과 그늘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밤에도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연일 이어지니 몸도 마음도 지친다. 여기에 책 읽자는 이야기를 하자니 민망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정도를 지나 제 정신인지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터다.


그러나 돌멩이를 맞을 각오를 하고 말하자면 여름이야 말로 책을 읽기 마땅한 때다. 아, 물론 책 읽기 '좋은' 때는 아니지만 말이다. 흔히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가을이면 독서 관련 각종 행사가 풍성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인즉 맞다. 수확의 계절이라 마음은 넉넉하고, 바람 선선하니 차분히 앉아 책을 뒤적이기 딱 좋다. 그러나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현실은 아주 다르다. 들로, 산으로 놀러가기 좋은 때여선지 책을 손에 드는 이는 오히려 드물어진다.

'여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역설은 서점, 출판계의 경험으로 입증된 지 오래다. 출판계에선 6~7월을 대목으로 잡아 대작, 기대작을 이 때 집중 출간한다. 이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 덕-여기선 각급 학교에서 방학과제 삼아 추천해준 '필독서' 목록의 위력도 있으리라-일 수도 있고, 이래저래 주머니사정으로 책으로 땀을 식혀야 하는 이들이 많은 탓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정은 그렇다. 아니, 그랬다. 이제는 사철 책이 안 읽히기 때문이다.


선인세로 몇 억 원을 줬다는 외국 화제작이 띄엄띄엄 꿈틀거리고, 만 부를 넘겼다는 에세이집 소식도 드문드문 있긴 하다. 하지만 인문학 책은 초판을 500부, 기껏해야 1,000부 찍는 데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책이고, 관련 공부를 하는 이들만 해도 기천 명은 되지 싶은데도 형편이 그렇다. 그런데,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책을 읽을 때가 아닌가 싶다. 숨을 허덕이는 출판계를 살리자는 의도가 아니다. 책 읽기가, 요즘 흔히 하는 경쟁력 확보요, 차별화의 방편으로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원로 출판인의 말씀이 떠오른다.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지만 그 분은 "경기가 안 좋아서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안 읽어서 경제가 나빠졌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세계문학전집이며 세계사상전집 같은 대형 기획물이 출간되었고, 60년대 전후 한국 지성을 대표하던 잡지 '사상계'가 10만 부씩 나갔다. 나라 경제나 가계 사정이 그 때가 지금보다 좋았을 리 없는데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독서열로 상징되는 지식욕이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는데 갈수록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걸 보면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라 했다.그보다 젊은, 현역 출판인이 펴는 더 솔깃한 주장도 들었다.


그는 모두들 점수에, 스펙에 목을 매고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데 명문학원, 족집게 과외를 한다고 모두 일류대에 못 가는 이유가 궁금했단다. 그러면서 '남다름'을 위한 플러스 알파로 책읽기를 꼽았다. 책이 소수의, 선택된 이들을 위한 출세의 '사다리', 성공의 비법, 생존경쟁의 무기가 될 것이라 자신했다.이런 이야기를 출판계 인사들의 '제 논에 물대기'식 논리라 여길 수는 있다. 그렇다면 "서중자유천종록(書中自有千鍾祿)"이란 옛 말은 어떤가. 책 속에 수많은 봉록이 있다는 이 구절은 선인들의 오랜 지혜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말일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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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바뀌어 책 말고도 지식과 재미를 얻을 수단은 많아지긴 했다. 굳이 봉록(돈)이 아니어도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그렇긴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의미도 적다. 시험점수, 어학연수, 배낭여행, 봉사 같은, 빵틀에 찍어낸 '국화빵'을 낼 것이 아니라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토핑'이라도 새롭게 할 일이다. 찬 물에 발 씻고 그늘에 누워 매미소리 들으면서.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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