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의 갤러리산책] 세련되게 돌아온 진주 귀걸이 소녀
네덜란드 국민 작가 어윈 올라프 사진전
바로크 미술에 현대의 패션 결합 시도
인종·신분·동성애·관습 날카롭게 풍자
공근혜갤러리서 24일부터 전시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58)는 네덜란드에서 국민 작가로 통한다. 17세기 황금시대의 전통 회화기법을 차용해 자국민을 넘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1606~1669),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 등 거장들의 맥을 이으면서도 동시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현대작가로 인정받는다.
공근혜 공근혜갤러리 대표(46)는 "자국에서도 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현재는 상하이, 디트로이트와도 연계해 현지 로케이션 작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확실히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의 고전 회화를 보는 듯하다. 정물 또는 인물의 구도와 배치, 빛과 색의 대조(Contrast)를 통한 명암처리 등 그 전형을 따른다. 하지만 단순히 모방만 했다면 전폭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반드시 재해석을 거친다. 있는 그대로 찍기보다 세밀한 연출력을 발휘하며 공을 들인다.
올라프는 "나는 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 내 삶을 꿈꾸기 때문에 현실을 따르고 싶지 않다. 동시대적인 것들이 지나치게 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면 그것을 복제하려고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만의 꿈을 꾸기를 원한다"고 했다.
사진은 대체로 광고·패션·순수예술 분야로 나뉘지만 올라프는 그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상업광고와 순수예술계 모두가 그를 선호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광고에서도 예술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순수 예술사진도 완벽하게 소화한다. 2013년 10월 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 표지를 위해 작업한 '마스터 앤드 더 걸(Master and the Girl)' 시리즈는 그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그 중 'Vogue NL 01(2013)'은 그의 심미안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베르메르의 1666년 작품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에서 영감을 받았다. 원작은 바로크시대의 세계관을 담은 역사화라고 할 수 있다. 머리에 쓴 터번과 큰 눈, 우연히 포착한 듯한 시선처리, 살짝 벌어진 입술까지 순수한 소녀의 찰나를 그렸다. 여기에 반짝이는 진주귀걸이가 돋보인다.
하지만 올라프의 작품은 원작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네덜란드 모델 이므레 스티케마(25)다. 그녀는 고전적인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됐지만, 원작과 달리 강렬한 눈빛과 더불어 털실 소재의 커다란 니트 모자와 헤드폰을 착용해 시선을 빼앗는다. 올라프는 고전과 현대의 패션을 결합하며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는 등 시대의 모습을 재정립했다.
동성연애주의자이기도 한 올라프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위트레흐트 저널리즘스쿨을 졸업했지만, 글보다 사진작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오랫동안 폐기종을 앓고 있는데 스스로 오래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른 불안감과 절실함이 작품에 서려 있다. 이는 2008년 제작한 '가을'(Fall·2008) 시리즈에 등장하는 청년의 눈빛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완벽한 아름다움도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추구하는 방향도 일정치 않다. 그는 사회비판적 사진은 물론, 영상, 조각, 설치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노선을 가리지 않는다. 인종, 신분, 동성애, 관습 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비디오와 사진이 결합된 '최신유행(Le Dernier Cri·2006)'은 미래(2019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여자들의 패션 집착과 과도한 성형수술에 대한 고찰이 엿보인다.
그는 2012년 9월과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공근혜 대표는 "그는 동시대를 살면서 현실비판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지난해 11월에 우리나라 탄핵집회에 동참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평화적인 민주화 과정을 지켜보니 너무나 기쁘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어윈 올라프의 세 번째 한국 개인전 '휴먼 앤드 네이처(Human & Nature)'는 오는 24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 2000년대 들어 제작한 시리즈 중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사진 열다섯 점을 모았다. 그는 22일 오후 내한할 예정이다. 작품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Vogue like a painting)'전(6월24일~10월 7일)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