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책과 저자]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로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여럿 있다.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Ab Urbe Condita Libri)〉는 꼭 읽어야 한다. 총 142권 중에 1~10권과 21~45권이 남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은 부분만으로도 로마를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가 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마사〉의 1~10권을 읽고 쓴 논평이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이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의 정치적ㆍ군사적 제도와 대외정책을 상세히 분석하고 군주정보다 인민의 자유와 정치참여를 존중하는 공화정이 위대한 국가에 이를 수 있는 정치체제라고 주장한다.
테오도르 몸젠이 쓴 〈로마사(Roemische Geschichte)〉는 로마 건국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망까지 다룬 책이다.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노력했기에 좀 더 실증적이며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몸젠은 이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에드워드 기본이 쓴 〈로마제국흥망사(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는 이야기체 서술 방식을 택해 부드럽게 읽히지만 입문서는 아니다. 술술 읽힌다는 말은 상당한 기반지식을 갖춘 사람에게 해당된다.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해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로마혁명사(The Roman Revolution)〉는 키케로가 카틸리나의 역모를 막아내 ‘로마의 국부’가 되는 기원전 63년부터 아우구스투스가 죽는 기원후 14년까지를 다룬 책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가 국내에 번역 출판되자 우리 대중 독자들이 로마 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어 많이 팔려나갔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판적인 독자들에게 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나미의 책도 예외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를 서술한 부분이나 로마의 속주 통치를 미화한 부분에서 오류 내지 관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아울러 시오노의 주제의식과 문체가 정치적으로 우경화되어 특히 청소년들에게 편향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서 나나미를 일컬어 일본 우익 제국주의 성향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작가이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하였다.(130~148쪽)
나나미의 책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가 여러 곳에 걸쳐 드러난다. 그는 로마인이야기에서 로마가 치른 수많은 전쟁을 다루면서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는 용병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시민군의 창설을 희구한 마키아벨리의 관점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인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관으로 일할 때 시민군을 조직하기도 했는데, 나나미는 그가 조직한 시민군이 처음 대오를 갖춰 훈련하는 날을 “마키아벨리의 삶 중 제일 행복한 날이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행복에 대한 나나미의 공감은 자위대를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의 병력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는 아베 신조의 야욕과 같은 위도에서 국가의 폭력 수단을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많은 한국인에게 나나미는 불결한 인물이다. 그의 ‘일본군 성노예’ 발언은 열도주의 극우인사의 면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지난 2014년 보수 성향의 월간잡지 〈문예춘추〉 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네덜란드 여자들까지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라며 “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급히 손을 써야 한다’는 말은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뜻이 아니다. 진실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단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뿐 아니라 나나미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기사를 게재한 〈아사히 신문〉 관계자와 위안부 동원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개입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관련자들을 모조리 청문회에 세워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번역돼 나온 메리 비어드의 글로벌 베스트셀러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는 나나미 식의 로마 이야기에 싫증난 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책이다. 비어드가 제공하는 담론의 수준과 깊이는 나나미가 써낸 이야기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원래 제목은 ‘SPQR’인데, 로마를 설명하는 세나투스 포풀루스케 로마누스(Senatus Populus Que Romanus), 곧 ‘원로원과 로마 인민’을 뜻한다. 비어드는 로마의 쇠퇴와 붕괴에 주목한 기번과 달리 로마의 성장과 함께 어떻게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제국을 유지했는지 주목하면서 로마의 건국에서 시민권이 부여된 212년까지 1000년에 이르는 역사를 세밀히 살폈다. 비어드가 쓴 로마 역사는 자신의 관점이나 해석을 객관화된 설명처럼 포장해 서술하는 기존의 역사가들이나 역사 소설 작가들이 남긴 책과 매우 다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비어드에게 하나의 거대한 ‘로마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의 세계가 이탈리아 밖으로 멀리 뻗어나갔을 때 ‘로마의 역사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브리튼의 역사나 아프리카의 역사와 다르다.’ 따라서 각기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물론 ‘서로 다른 시기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종류의 역사가 쓰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항아리 조각이나 돌에 새겨진 몇 개의 글자 같은 증거 하나하나를 쥐어짜 이야기를 대담하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비어드의 지론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자신의 해석이나 사료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독자에게 절대로 강요하듯 지시하지 않는다. 독자 나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문제를 던져주며, 그런 과정에서 독자는 저자와 동류가 된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는 ‘카틸리나의 음모’로 시작된다. 공화정 말기에 일어난 국가 전복 음모다. 명문가 출신인 카틸리나는 집정관 선거에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도 변방 출신의 신출내기 키케로에게 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선거에서 잇따라 져 빈털터리가 된 카틸리나는 사병을 동원해 키케로를 암살하고 로마공화정을 전복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한 뒤 반란 가담자들을 재판도 없이 모두 처형한다. 그러나 로마는 엄격했다. 카틸리나를 재판 없이 처형한 행위는 ‘로마의 모든 인민은 누구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원칙을 위배했다. 이는 또한 절대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 간주되었다. 키케로는 결국 추방당했다가 1년 만에 로마로 돌아갔지만 참혹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어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SPQR’이라는 제목에 있으리라. 황제조차 원로원과 로마 인민이 건재한 이상 누구도 절대 권력자가 될 수 없다. 원로원과 시민의 승인으로 통치권을 위임받는 존재일 뿐이다. 집정관, 원로원, 민회라는 로마의 공화정은 황제의 정치가 독재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견제와 균형을 갖춘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여기에 로마에는 피정복 민과 이해로 얽힌 정치세력들을 융합하는 유연성과 자신감이 있었다. 로마와 끊임없이 대결한 갈리아인의 후손이나 북아프리가 유목인의 후손, 심지어 노예 출신조차도 로마의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서기 212년 카라칼라 황제가 로마 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로마’는 단지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제국의 이름이 되었다. 이 책은 로마 원로원과 인민이 나누는 대화이며 우리는 독서를 함으로써 그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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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비어드 지음/김지혜 옮김/다른/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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