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바뀌나②]축산·화훼 시장 울상…"사라진 5월 특수"
"꽃도 뇌물"…화훼농가 판매량 감소에 울상
관계부처 소비 활성화 대책은 미봉책 지적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방법이 있나요, 전부 폐기처분해야죠. 시들어버린 꽃을 어디에 팔 수 있겠어요."
서울 서대문구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오연숙(50)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년같으면 어버이날(8일), 로즈데이(14일), 성년의날·스승의날(15일), 부부의날이 몰려 연중 최대 특수로 바빴을 시기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 이후로 꽃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꽃도 뇌물이 될 수 있다고 하니 5월이 돼도 별로 찾는 사람이 없다"면서 "가장 매출 비중이 높던 스승의 날 주문은 완전히 뚝 끊겼다"고 말했다.
2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전인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30일까지 실시된 aT 화훼공판장 경매 금액은 677억원이었지만 2016년 10월부터 올해 4월 30일까지는 642억원으로 급감했다. 청탁금지법으로 경조사 화환이나 스승의 날의 카네이션도 '뇌물'로 간주되면서 관련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다.
실제로 지난 15일 국내 상당수의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 등이 가정통신문 등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카네이션을 포함한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치원생 딸을 둔 학부모 백민주(34)씨는 "평소 감사한 일이 많아 간식이라도 하시라는 마음에 집에서 샌드위치를 싸갔는데 이 마저도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면서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 송이 선물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실감난다"고 말했다.
축산 농가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을 기준으로 한우 kg당 경매가격은 법 시행된 지난해 9월 이후 14.1% 하락했다. 마리당 약 100만원 정도 떨어진 것이다. 최근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지만, 예년 평균 가격을 되찾기는 요원하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청탁금지법에서 농·수·축산물을 제외하는 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내각 인사청문회와 주요 법안에 밀려 처리 여부가 불투명하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연말 서울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서 화훼업체들과 만나 "화훼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종합발전 대책을 내년 3월까지 수립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농식품부도 연초 화훼산업 5개년 종합대책과 함께 '과수산업 5개년 종합대책'도 3월 안에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 역시 새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다소 밀려난 상태다.
농민 단체들은 직접 문 대통령과 정부에 청탁금지법 개선안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한국 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한농연)는 대선 기간 내내 청탁금지법에서 국산 농축수산물을 완전히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해왔다.
앞서 정부는 화훼 소비감소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화훼류 소비 활성화 추진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련 활성화 계획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직매장 내에 화훼 판매코너 설치를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정작 유통 현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카테고리의 상품과 즉석조리, 판촉행사 등으로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관리도 까다로운 생화를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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