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의 디스코피아 44]Jaco Pastorius - Jaco Pastorius(1976)
일렉트릭 베이스의 역사적 순간
재킷 속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표정의 사내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명성이 알려진 지금에야 좀 거만하긴 해도 그럴 만도 하다 싶지만, 그는 무명일 때부터 그랬다. 자코가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조 자비눌(Zoe Zawinul)에게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라고 소개한 사실은 유명하다. 자비눌은 황당해 했지만 곧 그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천재적 재능과 자신감으로 가득한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처녀작에서 우리가 접할 것은 신인의 신선함, 가능성이 아니라 완성된 기술이다.
베이스에 의한, 베이스를 위한 앨범이다. 펜더 재즈 베이스가 가진 거의 모든 음의 발현, 기막히게 창의적인 베이스 라인, 단단한 그루브 등 이 모든 것이 자코의 손끝에서 현실이 된다. 샘 무어(Sam Moore)와 데이브 프레이터(Dave Prater)의 보컬과 브라스 세션, 베이스의 조합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소울넘버 ‘컴 온, 컴 온 오버(Come on, Come on Over)’ 외에는 전부 연주곡이다. 특히 베이시스트와 재즈 애호가들을 동시 만족시킬 곡들의 행진이다.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를 베이스만으로 리메이크 한 ‘도나 리(Donna Lee)’와 하모닉스 주법이 압권인 ‘포트레잇 오브 트레이시(Portrait of Tracy)’는 모든 베이시스트의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 문어의 끈적함과 물컹한 질감을 구현한 ‘오퍼스 포커스(Opus Pocus)’, 펜더 로즈 피아노와 베이스의 아련한 음색이 근사한 멜로디 라인을 따라 퍼지는 ‘컨티뉴엄(Continuum)’, 자코 특유의 싱코페이션과 멜로딕한 베이스 라인이 피아노와 관악기들을 줄기차게 몰아대는 ‘차차((Used to be a)Cha Cha)’는 재즈애호가를 흡족케 한다. 모든 곡에서 자코의 연주는 더 없이 현란하면서도 리듬파트의 역할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여기에 데이비드 샌본(David Sanborn), 허비 행콕(Herbie Hancock), 돈 알리아스(Don Alias) 등 거장들의 참여가 앨범의 격과 질을 한껏 올린다.
아쉬운 점도 없잖다. 훌륭한 데뷔작이지만 이후 웨더 리포트에서의 작곡보다 편안함이 덜하며 기억에 남는 멜로디도 적다. 편곡 역시 멜로디보다는 베이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베이스 독주인 ‘도나 리’가 끝나고 ‘컴 온, 컴 온 오버’의 폭발적인 브라스와 베이스로 연결되는 앨범 초반의 구성은 드라마틱하지만 이후로 베이스 위주의 곡들만 두드러진다. 예외는 마지막 곡인 ‘포가튼 러브(Fogotten Love)’ 뿐이다. 연주야 물론 경탄스러우나 계속 쫓아가다 보니 숨이 차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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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아쉬움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조차도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이기에 다소 부당하다. 주로 리듬악기로 역할이 제한되었던 베이스는 태생적으로 조명의 뒷전이었으며, 대중음악계에서 베이스가 이토록 절대적인 지배소 역할을 한 앨범은 그 때까지 없었다. 이에 더해 천재적이고 완벽한 연주는 베이스라는 악기의 확장성을 거의 한계까지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단지 ‘천재 음악가의 데뷔작’이나 ‘재즈 명반 중 하나’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일렉트릭 베이스에 있어서는 대단히 역사적인 순간이다.
서덕(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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