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전女子傳,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표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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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거기 꽃 피고 새 울고 천둥치고 바람 부니 머지않아 열매 맺을 것이다."-'여자전女子傳' 머리말 中


일상과 일생.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토막들을 통틀어 '삶의 이야기'라고 부른다. 영화와 소설, 노래 등 대중문화는 물론 역사도 결국 그런 이야기들을 기록한 인류의 거대한 흔적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전(傳)'의 형식으로 묶어내곤 했다. '춘향전'·'심청전'·'흥부전'·'박씨전' 등이 그 예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전女子傳,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는 한국 현대사를 맨몸으로 헤쳐 온 여자의 이야기다. 책은 2007년 출간 뒤 절판됐다가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사람들은 풍파가 많은 인생을 떠올릴 때 "내 살아온 사연을 다 풀어놓으면 책 열권으로도 모자란다"고 말한다. '여자전女子傳'은 전쟁과 해방 등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져 들풀처럼 끈질기게 생존한 일곱 여자의 한 서린 인생 여정을 다루고 있다.


피난길에 아버지와 오빠를 찾아 산에 올랐다 동상으로 발가락이 빠져버린 고계연 할머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만주에 갔다 중국 팔로군을 거쳐 중공군 자격으로 한국전에 투입된 윤금선 할머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차에 올라탔다가 만주에서 일본군의 성노예로 지내며 자궁까지 적출당한 김수해 할머니. 월북한 남편을 기다리며 수절한 안동 종부 김후웅 할머니. 죽은 사람만 그리워하며 50년간 미혼모로 살아온 최옥분 할머니. 피난지 부산에서 우연히 창문 너머 춤을 배웠던 이선옥 할머니.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절 대학로 문화판에서 기성권력을 향해 거침없는 목소리를 냈던 박의순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인터뷰 전문 칼럼니스트인 김서령의 글을 빌려 밀도 있는 생명력을 얻었다. 저자 김서령은 역사책에서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목소리, 그 흩어진 음성을 찾아 서울과 광주, 대구, 안동, 속초에 이르기까지 반도를 누벼야 했다. 반세기 동안의 이야기를 하룻저녁에 풀어놓기란 불가능해 이야기는 계속되고 또 날이 새도록 이어졌다.


각 원고지 100장 정도의 짧은 이야기 안에는 오늘날의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시련, 절망이 담겨 있다. 가혹한 운명을 맞아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겪은 이들을 삶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를 그 현장으로 이끌어간다. 각각의 애절한 삶에는 한국 현대사가 남긴 잔인한 파편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삶을 저주하며 좌절하기 보단 두 발로 똑바로 서서 수난의 세월을 헤쳐 나왔다. 빨치산 아무개가 세일즈우먼으로, 팔로군이 의사와 기공수련가로 거듭났다. 황진이를 꿈꿨던 춤꾼은 문화계를 선도하는 걸물이자 아이들을 보살피는 유치원 원장이 됐다. 이처럼 강하게 살아남은 것은 무슨 이념 때문도 아니고 역사의 거창한 진보라고 할 수도 없다. 오직 인간애. 삶의 수난을 털어내고 의지로 주변을 껴안은 '긍정의 힘' 덕분이다.


'여자전女子傳'에 대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의 말은 독자가 느낄 뭉클한 감정을 대신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수난사'라고 한다. 그런데 김서령 선생이 인터뷰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난은 있어도 '수난사史'는 없다고 느껴진다. 이데올로기 갈등, 분단, 외세의 침입, 경찰국가의 억압 등의 수난이 닥쳐와도, 이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자존심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과 이웃의 인생들을 따스하게 가꾸어나갔으며, 인생을 즐기려는 욕망과 낙관, 유머감각도 잃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서야 한국사회가 분단, 전쟁, 독재를 넘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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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지음/푸른역사/252쪽/1만3900원>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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