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토박이들이 전하는 어제와 오늘?
ㅇ공구·조각·인쇄·음식점 등 생업에 종사해 온 주민들이 전하는 을지로 토박이들이 전하는 우리나라 근대화 이끈 산업 역군들 생생한 이야기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을지로를 묵묵히 지켜온 토박이들. 그들의 육성이 생생이 담긴 동영상을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 을지로동 역사전시관에 공개 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 중구가 선정한 10대 뉴스 중에 하나로 꼽히는‘을지유람(遊覽)’ 투어프로그램은 산업현장의 중심이었던 을지로를 문화·예술적 측면에서 재조명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렇게 을지로에 스토리를 담아 투어프로그램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는 현재까지 이 곳을 생업의 현장으로 지키고 있는 산업역군들이다.
을지로3가에서 여관 귀빈장을 20째 운영하고 있는 강대성(71)씨는 20세 남짓부터 을지로를 맴돌았다.
현재 은행과 대기업 본사 등이 몰려있는 을지로 1,2가를 제외한 을지로 4,5,6가는 그대로라고 전하는 그의 눈엔 을지로는“앞면만 변하고 뒷면을 들여다보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어요, 반면에 주민들은 달라졌죠. 남아있는 사람들은 5%도 안될 겁니다. 70~80년대엔 룸싸롱, 요정들이 많았고 다방이 한집건너였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듭니다”고 을지로를 회상하는 그는 주민이 돌아와 살 수 있는 터전으로서 을지로가 재개발되길 바란다며 “원자탄 빼고 다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을지로의 매력을 꼽는다.
을지로 자치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는 강인석씨(72)는 1972년에 을지로에 의상실을 열었다.
“당시는 옷을 맞춰입는 시절이라 종업원이 많았죠. 당시 평화시장에 있었던 사보나 상가는 아동복 전문상인들이 많았는데 우리집에서 패턴을 많이 가져갔죠. 패턴이 유행하면 주문이 많이 몰려왔어요. 일본에 가져가 파는 상인들도 많았어요”
이렇듯 의류 패턴까지 원조로 제조했던 그 시절 그에게 을지로 추억의 장소는 2014년에 철거된 수도예식장. 을지예식장과 함께 인근에 대표적 결혼식장으로 꼽혔던 수도예식장에서 그는 1973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만 해도 결혼 커플이 많아 수십개의 홀에서 30분 간격으로 결혼식이 이루어졌다고 회고한다.
그가 을지로에 들어왔을 당시 복개됐던 청계천은 고가도로가 건설되고 다시 복개과정을 거치면서 먼지가 없어져 공기가 많이 좋아졌다며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강씨는“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도매상가가 펼쳐져 있는 곳이 을지로입니다. 약 2km 반경으로 좁은골목에 평화, 광장, 중부, 방산, 조명, 미싱, 가구, 공구상가 등이 모여있죠. 이런 곳이 세계 어느 곳에 있을까요?”라며 이렇게 얽혀 생업을 지켜온 상인들의 생활력을 큰 자랑거리로 삼는다.
산업현장으로 일꾼들과 손님들이 모여들었던 을지로에는 음식점들도 이 무렵 많이 생겼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을지로 골목길에 위치한 ‘전주집’을 28년째 운영하고 있는 홍성준씨(58)는 그가 전주에서 올라왔던 70년대 후반 당시 먹자골목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가게 초창기에 인근 은행에 다니던 말단 직원이 간부, 행장등을 지내다가 퇴직해서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돈없이 먹고 시계를 풀어주기도 했던 손님들이 이젠 백발이 돼서도 단골손님으로 오십니다”고 전했다.
중구 통장협의회 회장으로 동네일에 적극 나서고 있는 그는“을지로 주민들은 산업역군들이죠. 전성기에는 일꾼들을 두고 했지만 지금은 주인 혼자 가게별로 기계를 분화해 협업해 가며 일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정이 아직 남아있는 을지로 자랑에 끝이 없다.
가장 을지로다운 곳, 공구상가를 40여년째 이어가고 있는‘나비조각’의 방명석씨(66). 기계가 없던 시절에 일본으로부터 기계를 도입해 운영했던 70~80년대에는 직원이 8명까지도 있었던 가게를 현재는 아내와 같이 지키고 있다.
“전성기였던 그 시절 청화대 헌장 조각을 비롯해 큰 대기업이었던 아남산업, 삼성, 금성 등 일을 많이 했죠. 8~9개월 분량정도 확보해 일을 했었을 정도로 호황을 이뤄 공무원보다 3배정도 보수가 좋았어요. 이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화되면서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그 당시 예술성은 지금도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생산하는 기간은 짧아졌지만 예술성은 떨어지죠”라며 방씨는 도심 재개발과 함께 조각·타일거리가 다시 번창하길 기대해 본다.
80년대 초에 을지로 인쇄업에 종사하다가 기계부품을 좋아해 금속가공업인‘신진정밀’을 연 김영남씨(65)는 정말로 기계를 사랑하는 산업역군이다.
2008년 한국인 최초 우주인인 이소연씨가 신체변화 측정을 위해 가져간 등고선 촬영기도 바로 그의 손으로 제작됐다.
뿐 아니라 영국 유명 전자악기 회사에서 쓰는 부품까지 그의 손을 타 상품이 히트할때마다 감사편지를 받았다는 김씨는 “손님으로부터 기계 제작을 의뢰받으면 무슨 물건이든지 맞춰 만들 수 있다”라는 그의 미소에는 장인(匠人)의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요즘 보기 힘든 옛 글씨체로 남아있는 간판에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골목을 지키고 있는 그는 올해 새롭게 운영되고 있는 ‘을지유람(遊覽)’을 적극 추천한다.
“을지로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겉과 속을 훑으며 우니나라 산업현장의 역사와 스토리를 느낄 수 있는 을지로, 사라지기 전에 꼭 보시고 보존 가치를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전하는 김씨의 일터는 최근 부쩍 늘어난 을지로 방문객들에게 인기코스 중 하나다.
'을지유람'은 중구민들로 구성된 구민해설사들의 안내로 타일·도기거리, 송림수제화(서울시 선정 미래유산), 원조녹두, 노가리골목, 양미옥, 공구거리, 통일집, 조각거리, 조명거리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돼 있다.
모두 을지로 골목의 역사문화유산, 특화거리, 맛집, 영화 촬영지 등이다. 또한 을지로 골목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디자인·예술가들의 작업장도 찾아 공방 등 체험 프로그램도 경험하게 된다.
올해 4월부터 주말과 평일에 걸쳐 74회 운영돼 733명의 방문객이 찾은 ‘을지유람’은 동절기인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잠시 중단하다가 내년 3년부터 다시 운영된다.
을지유람 코스를 일주하는데 약 90분이 소요된다. 을지로의 속살을 느껴볼 수 있도록 1회당 인원은 10명 이내로 한다.
중구 홈페이지(www.junggu.seoul.kr)의 '을지유람' 메뉴에서 투어 신청을 하면 된다. 무료로 진행되며, 체험 프로그램은 별도의 재료비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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