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만들어 농업,친환경 에너지 산업 하고 싶습니다."
북한이탈 주민 이근혁 보은전자 해외영업팀장의 꿈
[아시아경제 박희준 편집위원]"온갖 비법 책이 많이 있지만, 선택한 길을 꾸준히 지키는 것이 저의 정착 비법(노하우)입니다."
남한 생활 18년째로 한국 사회에 완전히 착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근혁씨(36)가 최근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남한에 와서 대학을 나와 디지털 영상 및 방송장비를 생산·수출하는 벤처기업인 보은전자의 해외영업 팀장으로서 수출 증대에 앞장서는 수출 역군이자 세 자녀의 가장이기도 하니 이런 평가를 충분히 받을 만하다. 이 팀장은 통일부 산하의 북한이탈주민 관리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이 성공적인 정착 사례로 알릴만큼 남한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그는 2007년 보은전자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입사해 국내 영업부서를 거쳐 2011년 말 해외영업팀장이 됐다. 입사 10년째를 맞은 올해까지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영업에만 매달리고 있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선택한 길을 꿋꿋이 가고 있다.
'남한에 와서 살아보니 어떠냐'는 물음에 이 팀장은 "70~80%는 남한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남북을 보는 정서상의 차이는 남한 정착에서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1998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탈북했다. 우리나이로 18살 때였다. 본래 평양 용성구역 출신인 그는 군의관이던 아버지가 제대하면서 고향인 함경남도 정평으로 갔다가 12살 때 다시 함흥으로 이사했다. 14살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생활고가 심해 남한으로 가기로 작정했다. 이 팀장은 "어머니가 외국문화출판사에 근무해 해외 사정을 알았다"면서 "3년간 중국으로 갈 비용 50달러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모친은 김책공대 금속학부 인쇄공학과를 졸업해 동독을 드나들며 인쇄 장비를 들여온 기술자로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능통했다. 외국이 잘 산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 팀장은 어린 나이에 라디오로 남한이 잘 산다는 것도 알았다고 한다.
어렵사리 탈북해 고생 끝에 어머니와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갔지만 베이징 한국영사관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 팀장은 "우리에겐 플랜A(탈북, 한국행) 뿐이었다"면서 "주머니에 남은 돈은 단 120위안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팀장은 "어머니가 중국 이외의 아무 나라나 가라고 하시면서 정해진 특정한 장소로 있는 곳을 알려주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면서 "전 기차를 타고 베이징에서 한 시간 거리인 텐진항으로 갔다. 거기서 거는 무조건 한국행 배에 숨어들었다"고 말했다. 며칠 만에 도착한 곳이 부산항이었다.
한국 정착은 말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통일부 산하 기관에서 정착 교육을 받고 나오니 막막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탈북한 그인 만큼 이런 일에는 굴하지 않았다. 우선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봤다. 중학교는 8개월, 고등학교는 6개월 만에 졸업했다. 그리고 2001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탈북 2년 만에 어머니도 모셔왔다. 생질도 같이 왔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딸린 식구가 있다 보니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현재 북한 이탈주민 중 사립대 입학생에게는 등록금의 절반만 지원된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취직한 곳이 보은전자다. 뭣이든 열심히 하는 그에게 회사 측이 입사를 권유해 정식으로 취직했다고 한다. 그 때 그의 나이 27살이었다. 열과 성을 다하는 그를 보고 회사 측은 회사 비용으로 영어를 배울 기회를 줬다.
이 팀장은 결혼도 했다. 남한 내 북한 이탈주민 커뮤니티에서 만난 함경북도 청진 출신 동갑내기와 결혼했다. 올해로 결혼 8년째다. 직장있고 월급 나오며 남한테 피해 안주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항상 도전하는 삶을 산다. 그의 소망은 뭘까. 통일이다. 이 팀장은 "항상 통일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서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있는 기술 있는 친구들과 공동마을을 만들어 농업, 친환경 에너지 장치산업을 해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북한을 이탈한 주민이나 혹은 이탈을 시도하려는 북한 주민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 팀장은 "기술을 갖고, 부지런한 농사꾼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다"면서 "무엇보다 준법정신을 갖는 게 꼭 필요하다. 준법정신 없이 정착하려 한다면 자칫 불법 돈벌이 빠져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한 주민들과 당국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선 제도 개선이다. 남한 내 일정기간, 예컨대 5년을 보낸 뒤에 재정지원을 해서 무작정 정착하겠다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돈을 날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마디로 탈북자가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 이를 바로잡아주는 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이탈주민을 동포로 봐주는 시각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이 팀장은 "북한 사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간관계가 깊다"면서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을 보는 시각을 안다면 제일로 큰 충격이 될 것"이라며 따뜻한 동포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팀장은 "남북한 사회는 혈육 같은 형제인데 경제원리, 통일대박이라는 원리로만 접근한다면 통일 후 지역감정의 골이 매우 깊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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