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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강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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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불쌍한 어머니! 울다 울다
 태양 아래 섰다
 태어난 날부터 나를 핥던 짐승이 사라진 자리
 오소소 냉기가 자리 잡았다

 드디어 딸을 벗어 버렸다!
 고려야 조선아 누대의 여자들아, 식민지들아
 죄 없이 죄 많은 수인(囚人)들아, 잘 가거라
 신성을 넘어 독성처럼 질긴 거미줄에 얽혀
 눈도 귀도 없이 늪에 사는 물귀신들아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 속의
 현모야, 양처야, 정숙아,
 잘 가거라. 자신을 통째로 죽인 희생을 채찍으로
 우리를 제압하던 당신을 배반할 수 없어
 물 밑에서 숨 쉬던 모반과 죄책감까지
 브래지어 풀듯이 풀어 버렸다
 어머니 장례 날, 여자와 잠을 자고 해변을 걷는 사내*여
 말하라. 이것이 햇살인가 허공인가
 나는 허공의 자유, 먼지의 고독이다
 불쌍한 어머니, 그녀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카뮈 '이방인'의 뫼르소.


 
[오후 한詩] 강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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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대의 여자들"이여, "죄 없이 죄 많은 수인(囚人)들"이여, 당신들의 성욕은 성욕이 아니었다. 당신들의 성욕은 "현모"였고 "양처"였고 "정숙"이었다. "식민지"였고 "물귀신"이었다.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였고 "자신을 통째로 죽인 희생"이었고 숨죽였던 "모반"이었고 당신들의 것이 아닌 "죄책감"이었다. "잘 가거라" 성욕이여. "잘 가거라" 어머니여. "어머니 장례 날, 여자와 잠을 자고 해변을 걷는 사내여", 이를 두고 단지 부조리하다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보라. 저 "허공의 자유"를, 저 "먼지의 고독"을, 저 가늠할 길 없는 어머니의 "불쌍"함을, 반복되어서도 재생되어서도 안 될 "불쌍한 어머니"를, 마침내 "브래지어"를 풀 듯 성욕으로부터 벗어난 어머니를. 그래서 시인의 성욕은 결코 성욕이 아니다. 그것은 단연코 해방이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다. 그것은 "태양 아래" "드디어" 비로소 바로 선 최초의 성스러운 기도다. "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 이제 전혀 다른 "누대"가 시작될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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